항목 ID | GC04206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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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妙覺寺 |
영어의미역 | Myogak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있었던 일본불교일련종의 사찰.
[개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개척하는 과정에서 불교나 신도 등 종교를 앞세워 정신적, 문화적 침투를 도모하는 한편 아래로부터 조선의 민중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1877년(고종 14) 9월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으로 진출한 정토진종(淨土眞宗) 오오타니파[大谷派]는 호국(護國)·호법(護法)의 일치를 표방하면서 포교를 개시하였고, 그 뒤를 이어 일련종(日蓮宗)이 포교를 시작하였다. 청일 전쟁을 계기로 정토진종 혼간지파[本派]와 정토종(淨土宗)이 새롭게 진출하였고, 이어 진언종(眞言宗)과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등이 조선으로 진출하여 별원과 포교당 등을 만들고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1879년(고종 16)경 부산에서는 법화경(法華經) 신도 집단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하나의 소집단을 조직하였으나, 적당한 포교사가 없어 해산의 위기에 처하자 1881년(고종 18) 5월 판정병삼랑(坂井兵三郞)이라는 사람을 나가사키[長崎]의 본연사(本蓮寺)에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포교사 파견을 요청하였다. 마침 산본행원(山本行院)의 주지 도변일운(渡邊日運)이 규슈[九州] 순례 중 직접 이를 듣고 흔쾌히 받아들여 7월 14일 부산으로 왔다. 도변일운은 서정(西町) 1정목(丁目)에 임시 포교소를 세우고 전도에 힘을 기울였다.
교세가 점차 확대되었고 1884년(고종 21)에는 자금을 모아 서정 2정목 20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당우를 세우고 묘각사(妙覺寺)라 칭하였다. 1891년(고종 28) 교토[京都] 본산 묘각사의 별원이 되었고, 1907년(순종 1) 5월 4일 통감부령에 의해 일련종 묘각사라 칭하였다.
[활동 사항]
일련종의 포교와 종교 의례를 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으며, 신도들의 보시 및 기부금으로 운영 유지되었다. 1912년부터 1935년까지 고좌현조(高佐顯照)가 주지를 맡았으며 1931년 이후에는 일본인 신도가 1,300호에 이르렀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 일본 불교가 조선에 침투한 과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