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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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Wel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홍보식 |
[정의]
부산 지역에서 발견되는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의 우물.
[개설]
인간이 한곳에 모여 살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우물은 사람들에게 식수원으로 생활에 중요한 시설의 하나였다. 우물은 본격적인 정주 생활이 시작된 청동기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삼국~통일 신라 시대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지역에서 확인된다.
우물은 나무로 만들거나 돌을 쌓아서 만든 석조 우물이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부분의 우물은 돌로 만든 석조 형태이다. 우물은 평소 지하수가 많은 지점을 선정하여 땅을 깊게 파 바닥에 자갈을 깔아 정수 장치를 만들고, 그 위에 벽체의 기초를 만든 다음 지면까지 돌로 벽을 쌓고 지면 위에 돌 또는 나무로 만든 난간을 설치한다. 우물의 평면 형태는 원형 또는 방형이 있고, 깊이는 우물의 크기와 지하수의 수량 및 사용자의 수와 사용 목적 등에 따라 다르다.
[부산 지역의 우물 유적]
부산 지역에서는 고려·조선 시대의 우물의 발견 사례는 없고,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의 우물이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그중 통일 신라 시대의 우물이 가장 많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물은 땅을 파고 내부에 돌을 쌓아 만든 석조 형태이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의 동래 읍성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 내에서는 모두 5기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5기의 우물은 모두 석조이고, 깊은 우물은 5m가 넘는다. 우물 바닥에는 자갈을 깔아 정화 시설을 만들었고, 내부에는 항아리와 나무 두레박이 들어 있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동래 읍성 내부 사람들이 사용한 우물이다.
철마 고촌리 유적에서 6기의 우물이 확인되었는데, 모두 석조이면서 평면 형태는 원형이다. 깊이는 200㎝ 이상인 것과 100㎝ 이하의 얕은 것이 있다. 깊은 우물은 바닥에 자갈을 깔아 정수 시설을 설치하였고, 1호 우물은 주위에 원형으로 석축을 쌓았다. 이 석축은 우물을 긷거나 주위에서 작업을 하기 위한 작업 공간으로 추정된다.
송정동 유적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답29-4, 60-1, 61-9번지 일대로 곽걸산 동쪽에 형성된 충적지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건물 터·수혈 유구·우물·석렬(石列)·하천 등이 확인되었다. 수혈 주거지에 인접해서 우물 1기가 분포하고, 주거지 앞쪽의 자연 하천 건너편에 1기의 우물이 분포한다. 우물은 모두 석조이고,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깊이는 180~220㎝로 깊지 않다.
우물 내부에서 옹(瓮)·합·호(壺)·병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우물에서 출토된 횡병은 목곽 몸통에 일조 직선의 점렬문과 기하학적 문양이 장식되었다. 같이 출토된 호의 표면에는 연속 마제형문과 다변화문이 장식되었다. 출토한 유물의 특징에 의하면, 우물은 8세기 전반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