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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314
한자 -等-市民對策委員會
영어의미역 Civil Measure Committee for Recovering Our Land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민운동 단체
설립자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외 32개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95년 3월 6일연표보기 - 창립
개칭 시기/일시 1999년 5월 20일 - 미국 점유 부산땅 되찾기 범시민추진위원회로 해소
최초 설립지 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초량 프라자 호텔

[정의]

1995~1999년 부산 하야리아 부대 기지 반환 운동을 전개한 시민운동 단체.

[설립 목적]

아메리칸센터, 캠프 하야리아, 유솜 부지, 55 보급창 등 미군이 점유하고 있는 부산 지역의 부지를 돌려받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95년 3월 6일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외 33개 단체의 연대로 창립되었다.

[변천]

1988년 팀스피릿 훈련으로 인하여 미군의 전술 핵무기가 부산에 입항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부산민족민주운동연합[약칭 ‘부민련’]을 중심으로 미군 기지 철거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1991년 12월 남북 간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이후 미군 기지로 인한 폐해 지역 주민과 함께 해결하려는 지역 주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이어받아 1993년 11월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약칭 ‘부산연합’]에서는 ‘하야리아 반환과 평화적 전환을 위한 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켜 캠프 하야리아 반환의 정당성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5년 3월 6일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외 33개 단체가 참여하여 ‘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약칭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99년 5월 20일 ‘아메리칸센터 반환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와 통합하여 ‘미국 점유 부산땅 되찾기 범시민추진위원회’로 해소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의 주요 사업은 하야리아 부대 기지 반환 운동이었다. 첫 활동으로 1995년 3월 16일 미국 영사관을 방문하여 ‘부산땅 하야리아 반환과 민족 자주권 유린 행위 근절을 촉구하는 항의 서한’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후 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는 매주 주민을 대상으로 전개된 기지 반환 서명 운동을 대단한 호응 속에서 진행하였는데, 세 차례의 주민 설문 조사와 두 차례의 공청회 등 7월까지 4개월 동안 주민의 요구를 응집시키는 활동을 전개했다.

1995년 7월 1일 부산진중학교에서 약 1,000명의 주민들과 함께 하는 ‘하야리아 반환 인간 띠 잇기 대회’를 진행하였으며, 하야리아 부대 정문 앞에서 “Give back, our land Hialeah!” 라는 구호를 하늘 높이 띄워 보냈다. 한편 6·27 지방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부산땅 하야리아 되찾기 공동 선언’에 참여하도록 촉구하여 성과를 내기도 했다.

1996년 2월 9일 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는 ‘하야리아 반환 10만 서명 운동’ 발대식과 ‘하야리아 반환 원년 선포 대회’를 개최하고 동별 주민 조직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동별로 설문 조사와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호별로 하야리아 반환 스티커를 대문에 부착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2월부터는 동별로 하야리아 반환 주민 노래 자랑 등으로 주민을 조직하여, 3월 9일 ‘하야리아 반환 1차 시민대회’를 서면에서 개최한 뒤 부산대학교 정문까지 평화 행진을 벌였다. 7월 28일에는 2차 인간 띠 잇기 행사를 개최하여 정부와 부산시의 소극성을 질타했다.

1997년에는 3월 20일부터 1년 동안 하야리아 반환 촉구를 위한 매주 목요 집회가 개최되었고. 매년 7월 28일에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치렀다. 이와 병행하여 우리땅 하야리아 등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는 미군 기지 이전의 문제의 본질인 한미 행정 협정[SOFA]의 전면적인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하야리아 미군 기지 무상 반환 결의 대회” 등 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에 전가하려는 미국의 행동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의의와 평가]

한 지역에서 단일한 사안을 두고 이토록 오랫동안 진행된 시민운동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20여 년의 장구한 하야리아 반환 운동의 역사는 부산의 시민 사회 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 과정이 주민 생활과 밀접히 결합하여 진행됨으로써, 대중 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하야리아 기지를 50년 넘게 점유한 미국으로부터 사용료를 받지 못했고, 이전 비용을 한국이 전적으로 부담하도록 한 한미 간의 결정을 변경하지 못했으며, 환경오염에 대한 미군의 책임 또한 묻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졸속 협상으로 초래된 결과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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