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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278
한자 玉泉齋
영어음역 Okcheon-jae
분야 종교/유교,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동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당
설립자 김학(金澩)
최초 설립지 옥천재 최초 설립지 - 부산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에 있었던 서당.

[설립 목적]

옥천재(玉泉齋)는 관립 학교인 향교에 대응하는 사립 학교로서 서원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학교이었다. 조선 후기 기장군의 선비들이 성금을 모아 자제들의 교학을 위한 서당으로 설립하였다.

[변천]

18세기경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 예림 마을에 학문이 깊고 훌륭한 인품을 갖춘 김학(金澩)이 서당급의 강학실을 차려 놓고 후학들을 교육하였다. 김학임진왜란 당시 선무원종 2등 공신과 3등 공신에 녹훈되었고 현재의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의열사(義烈祠)에 배향되어 있는 의병장 김일개(金一介) 장군의 현손으로 자는 위원(渭源)이며 1694년(숙종 20) 예림에서 태어나 1755년(영조 31)에 작고하였다. 이에 대한 글로는 용산재(龍山齋)에서 유생들을 가르쳤던 거유 월천(月泉) 신오(辛澳)[1714~1786]가 「옥천재기(玉泉齋記)」를 써서 전하지만 옥천재가 언제 퇴락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서원에 준하는 옥천재의 주요 교육 내용은 성리학적인 것이 중심을 이루었다. 사서오경으로 본원(本原)을 삼고, 『소학(小學)』·『가례(家禮)』를 문호(門戶)로 삼는다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 사서오경 외에도 여러 경사자집(經史子集)의 교육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현황]

옥천재는 퇴락하여 지금 전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옥천재는 조선 후기 기장 지역의 교육 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향촌 사회 서당 교육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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