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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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哀願- |
영어의미역 | Song a Pleading Bab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
집필자 | 조수미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길쌈할 때에 부르던 노동요.
[개설]
「애원 애기 노래」(2)는 봉건 가족 사회의 비극적인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서사 민요이다. 여인들이 주로 길쌈을 할 때 길쌈 노동요로 불렀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비기능요로 불리기도 했다. 「애원애기 노래」(2)에는 마지막 부분에 고려 속요 「정석가」에서처럼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하는 표현법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의 181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공저자들이 1997년 1월 13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이연악[여, 72]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애원 애기 노래」(2)는 독창으로 부른다. 사설은 애원 애기가 갖은 구박 속에서 시집살이를 하다가 저승에서 데리러 오자 시댁 식구들에게 대신 가 주겠냐고 묻지만 아무도 대신 가려 하지 않고 남편만 가 주겠다고 하니, 어린 자식을 남편에게 맡기고 저승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관용구의 지속적인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한 살 먹어 엄마 죽고/ 두 살 먹어 아배 죽고/ 호부 다섯/ 절에 올라/ 열 다섯에 가관해여/ 시접이라 가니까네/ 시금시금 시 할매가/ 키 작다고 나무래네/ 시금시금 시 할배는/ 나 작다고 나무래네/ 시금시금 시어무시/ 손 작다고 나무래네/ [중략] 그 질로 들와서러/ 왼쪽 손에 주게들고/ 오른 손에 행주들고/ 밥 펄라고 들어서니/ 칠십 다섯 노할배가/ 어지옷는 새매늘아/ 대문 전에 니로 찾네/ [중략] 날 찾을 일 아모 업소/ 웃방에 올라가서/ 시금시금 시할배요/ 이 내 대신 갈래기요/ 아가아가 매늘아가/ 니 대신은 니가 가고/ 내 대신은 내가 가지/ [중략]/ 꽁으새끼 기던 방에 내 새끼야 노던 방에/ 석사석사 김석사요/ 요 내 대신 갈래기요/ 니 대신은 내가 가께/ 내 대신은 니 오너라/ 오똑오똑 서는 애기 시낭갈 때 내 오꾸마/ 쪼작쪼작 걷는 아기/ 상각갈 때 내 오꾸마/ 나는 가면 당신 사요/ 당신 가면 내 몬사요/ 니는 가몬 언제 오노/ 동 솥에 앉힌 닭키 홰 치거든 내 오거시/ 등판 밑에 흐른 물이 강 되거든 내 오거시/ 부뚜막에 흐른 밥 띠/ 싹 나거든 내 오거시/ 방에라꼬 들어서니/ 성주님이 막아서네/ 정리에라 들어서니/ 조왕님이 막아서네/ [중략] 가자가자 어서가자/ 애원아가 어서가자/ 한 분을 떼굴리니/ 천동이 요동하고/ 또 한 분을 떼굴리니 지하가 요동하고/ 삼시분을 떼굴리니/ 아주가고 유웅갔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길쌈과 같은 밭농사는 주로 부녀자들의 몫이었다. 밭매기나 길쌈을 할 때에 마을의 여러 부녀자들이 모여서 함께 했다. 길쌈을 하면서 부녀자들은 노동의 지루함을 줄이고, 삶의 고단함을 달래고 극복하기 위하여 「애원 애기 노래」(2)를 불렀다.
[현황]
예전에는 여인들이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한탄하기 위하여 서사 민요를 즐겨 불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핵가족화로 인해 시집살이도 많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인내하고 순종하는 여인상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에 따라 「애원 애기 노래」(2)와 같은 서사 민요의 전승이 점점 끊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봉건적인 가족 제도 하에서는 며느리들이 시댁 식구들의 구박을 받으면서 시집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여인들이 한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담은 서사 민요를 즐겨 불렀다. 「애원 애기 노래」(2)도 이러한 서사 민요의 한 갈래이며, 여기에는 부당한 상황에서도 순종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여인들의 한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