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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 애기 노래」(1)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80
한자 哀願-
영어의미역 Song a Pleading Baby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집필자 조수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요|서사 민요|노동요
기능구분 길쌈 노동요
형식구분 독창
가창자/시연자 김옥이[여, 73]
채록 시기/일시 1997년 1월 24일 -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김옥이[여, 73]로부터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2년 12월 10일 - 김승찬·박경수·황경숙 공저, 『부산 민요 집성』에 수록
채록지 오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지도보기
가창권역 장안읍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길쌈할 때에 부르던 노동요.

[개설]

「애원 애기 노래」(1)은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일의 고통과 자신들의 설움을 표현하는 등 봉건 사회의 비극적인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서사 민요이다. 「애원 애기 노래」(1)은 부녀자들이 주로 길쌈을 할 때 수공 노동요로 불렀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비기능요로 불리기도 했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발행한 『부산 민요 집성』의 172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공저자들이 1997년 1월 24일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옥이[여, 73]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애원 애기 노래」(1)은 독창으로 부른다. 사설은 애원 애기가 조실부모하고 시집을 가서 시집살이를 하다가 저승에서 데리러 오자 시댁 식구들 중에 남편만이 자기 대신 가 주겠다고 하니, 애원 애기가 어린 자식을 남편에게 맡기고 저승으로 간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 전하는 이 「애원 애기 노래」(1)에는 시집살이 중에 애원 애기가 시댁 식구들로부터 구박 받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

한 살 묵어 엄마 죽고/ 두 살 묵어 아바 죽고/ 삼촌 거게 자라나여/ 열에 다섯 출가해여/ 시집가는 사흘만에/ 동재차지가 내 차지라/ 큰 정애 들어 서니 큰 솥은 닷말짜리/ 동솥은 머말짜리/ [중략] 아리 사랑에 내려가여/ 시금시금 시할매요/ 시금시금 시할배요/ 손주며늘 봐였다고/ 새별거튼 봉창궁개/ 해돋도록 자는기오/ 어떡싸게 일어나여/ 은대야에 세수를 하고/ 놋대야에 양지를 치고/ 석자수건 낯을 닦고/ 아측 진지나 잡으시소/ 큰 채에 올라와여/ 시금시금 시아버님/ 시금시금 시어머님/ [중략] 그러쿠로 돌아서니/ 대문 전에 와셨던 손님이/ 아가아가 애원아가/ 이승에도 잘한다고/ 후승에도 씰 데가 있어/ 너 데불러 내가 왔다/ 쇠방마치 손에 들고/ 괴 도리깨는 어깨 미고/ 천지돈지 뛰어가서/ 술 채리고 밥 채리고/ 마당 가운데 놔두놓고/ 배고프면 밥 자시고/ 돈 천 냥은 노자를 하고[그래 캐도 안 된다 카더랍니더. 데꼬 갈라 카더랍니다]./ [중략] 아이 사랑에 내리가서/ 시금시금 시할배요/ 시금시금 시할매요/ 요 내 대신을 갈란기요/ 어라야야 시끄럽다/ 염불도 못맥이고/ 소뿔도 각객인데/ 니 대신은 니가 가고/ 내 대신은 내가 가지/ 통시질캉 저승킬장/ 대신 갈 리가 전혀 없다/ 큰 채에 올라와서/ 시금시금 시아버님/ 시금시금 시어머님/ [중략] 쪼끄만한 재피방에/ 구름거튼 낭군님요/ 요 내 대신 갈란기요[신랑은 그래 첫 말에 갈라 커더랍니다]. 앙창앙창 걷는 애기/ 밥 줄라고 울거들랑/ 동서단에 밥해놨다/ 밥을 조여서 달게 하고/ 자는 애기 젖줄라고 울거들랑/ 앞 자반에 젖짜났다/ 젖을 조여서 달게하고/ [중략] 쇠방망치 등을 치네/ 어떡싸기 바삐가자/ 활대겉이 굽은 길에/ 살대같이 어떡가자/ 한 고개 넘어오니/ 깊은 데는 얕어지고/ 얕은 데는 깊어지고/ 또 한 고개 넘어오니/ 세상분별 몬 찾겠고/ 삼시 고개 넘어오니/ 우리 아기 우는 소리가/ 오 내 귀에 듣기서로/ 구름겉에 날러오니/ 대문전에 들어서니/ 여수겉은 시누부가/ 큰 방문을 살큼열고[못 오라고 손을 치니] [하략].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길쌈과 같은 밭농사는 주로 부녀자들의 몫이었다. 밭매기나 길쌈을 할 때에 마을의 여러 부녀자들이 모여서 함께 했다. 길쌈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행동을 통일한다거나 큰 힘을 쓰는 일은 아니었지만 부녀자들은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하여 「애원 애기 노래」(1)을 하면서 길쌈 작업을 진행하였다.

[현황]

예전에는 부녀자들이 쌓여 있는 한을 풀기 위해 서사 민요를 즐겨 불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핵가족화로 인해 시집살이도 많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인내하고 순종하는 여인상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에 따라 「애원 애기 노래」(1)과 같은 서사 민요의 전승이 점점 끊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봉건적인 가족 제도 아래에서는 며느리가 시댁 식구의 구박을 받으면서 시집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 부녀자들이 한을 풀어내는 방법의 하나로 신세 한탄을 담은 서사 민요를 즐겨 불렀다. 「애원 애기 노래」(1)에는 부당한 상황에서도 순종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여인들의 한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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