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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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湖島鹽田 |
영어의미역 | Salt Pond in Sinho Island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승훈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에 있던 1960년대까지 끓여서 만드는 자염을 생산하던 염전.
[개설]
섬 자체를 하나의 큰 염전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신호도(新湖島)에는 많은 염전이 있었다. 신호도 염전(新湖島鹽田)은 바다와 접하고 있으며, 제방을 쌓아서 만든 입빈식(入濱式) 유제 염전(有堤鹽田)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 염전법의 영향을 받아 제염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변천]
낙동강 하구의 여러 염전과 마찬가지로 신호도 염전에서도 짠물을 끓여서 소금을 생산하는 자염업(煮鹽業) 방식이 이용되었다. 1930년대에는 일본식 전오염(煎熬鹽) 제염법이 유입되면서 염전의 구조와 제염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염전에는 수관을 깔아 자연스럽게 짠물이 흘러가게 하였으며, 짠물을 여과하는 장치인 섯의 크기가 작아졌다.
1950년대 들어 대부분의 명지 염전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신호도 염전은 과거와 비슷한 생산량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신호도 염전도 사라 태풍으로 큰 위기를 맞은 뒤 1960년대 정부 시책으로 폐전이 시작되었고, 1965년 이후로 신호도와 사암 사이의 바다를 메우는 간척 사업을 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위치]
신호도의 북쪽 모래밭에 많은 염전이 있었는데 간척 사업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그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다.
[현황]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은 ‘신호도’ 혹은 ‘신도(新島)’라고 부르는 섬으로 사암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었다. 신호도는 여러 작은 섬으로 구성되었으며, 섬 사이로 뱃길이 있어 소금을 싣거나 연료를 운반하기에 용이하였다. 1950년대 신호도 염전의 총면적은 약 24만 7933.88㎡[7만 5000평]이었다. 이곳에서 양승일, 박영국, 임무갑 등 약 11명의 주인이 염전을 운영하였다. 개별 염전의 규모는 약 1만 1570.25㎡[3,500평]에서 3만 3057.85㎡[1만 평] 사이이었다.
[의의와 평가]
신호도 염전은 전체 규모 면에서 명지 염전과 녹산 염전보다 작았지만 1950년대 이후에도 위축되지 않고 과거의 생산량을 유지하였다. 신호도 주민들은 대부분 이 염전에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