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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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韓公社釜山支店 |
영어공식명칭 | The Korean Company, Busan Branch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9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래 |
[정의]
미군정 시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적산 관리 기관.
[설립 목적]
미군정은 1945년 11월 12일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소유하였던 재산을 인수하고 그것을 관리할 기구로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직을 개편하여 ‘신조선회사’로 개명하였다.
[변천]
수탈과 착취의 대명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이 부산에 설립된 것은 1921년 11월이었다. 해방이 되고 1945년 9월 7일 동척관리위원회 부산지부[위원장 민재우]가 조직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12일 신조선회사가 출범하였다. 신조선회사는 1946년 2월 21일 법령 제52호에 의해 ‘신한공사(新韓公社)’로 설립·개명되어, 1948년 3월 22일 ‘중앙토지행정처’로 개칭될 때까지 적산 관리 업무를 맡았다. 신한공사에는 미군 장교가 1명 배치되었는데, 부산에 처음 부임한 미군 장교는 고향이 충청남도 공주이며 하와이서 출생한 교포 2세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한공사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소유하였던 농지와 약 10만 2,000여 정보[1,011.57㎢]의 일본인[회사 및 개인] 소유 농지를 관리하게 되었는데, 토지의 보전, 이용 및 회계 등을 담당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신한공사 소유 경지가 남한 전체 경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논·밭 모두를 합쳐서 12.3%였고, 신한공사 소속 소작 농가는 58만 7,974호로 남한 전체 농가 217만 2,435호의 27.1%를 차지했다. 또한 신한공사가 관할하는 과수원은 2,411개소였으며, 임야는 3만 7,697정보[373.85㎢]였다.
그러나 신한공사는 단순히 동양척식주식회사 재산 및 일본인 소유 토지를 관리하는 기관만은 아니었다. 식량난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소작료를 거두어들이고 또 비소작지의 공출까지 담당해 도시민에 배급할 식량을 확보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신한공사 소속 농민들의 공출분인 미곡인 경우 1946년에는 한국 전체 공출의 29.1%, 1947년에는 32.5%를 차지했으며, 보리인 경우는 각각 23.0%, 10.8%를 차지했다.
신한공사가 관리하였던 토지는 농지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소작 형태를 유지했는데, 소작료는 1년 수확량의 30%를 원칙으로 했다. 해방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소유하였던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인은 전 수확고의 1/3을 반드시 현물로 신한공사에 납부하여야 했다. 이러한 방침 때문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후신으로 등장한 신한공사조차 당시 농민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 1948년 3월 22일 법령 173호에 의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지였다가 신한공사가 관리하던 귀속 농지는 소작인에게 연작의 20%로 15년간 연부 상환을 조건으로 분배되었다.
신한공사는 경성, 대전, 대구, 부산, 이리, 목포의 6개 지점이 있었는데, 부산지점의 관할 구역은 경상남도 전체에 걸쳐 있었다. 정규 직원의 규모로는 이리, 목포, 대전 다음으로 부산지점이 많았다. 1948년 1월 31일 현재 부산지점에는 정규 직원 270명, 비정규 직원 67명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 사는 소작인들을 비상근으로 감독하는 농감 592명으로 총 929명이 있었다. 소작료의 징수와 공출에서 농감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신한공사에서 거두어들이는 소작료는 당시 도시민의 식량 배급의 주요 원천이었기 때문에 현물 납부를 원칙으로 하였다. 1946년도에 신한공사 부산지점이 배정받은 수집 할당량은 13만 석에 달하였다. 이 목표량을 11월말까지 완료하라는 도장관의 지시가 있었는데, 완납은 12월 3일경에 이루어졌다. 할당된 미곡 수집 목표량의 달성에서 신한공사 부산지점은 가장 성과가 좋았다. 1946년도 미곡의 경우 신한공사 소작인들의 전국 평균 납부 실적은 74.7%였는데 부산지점은 94.7%에 달하였다. 신한공사 부산지점이 관리하였던 경지 규모는 신한공사가 관리하는 한국 전체 경지의 약 12.4% 정도를 차지하였다.
[현황]
신한공사가 해체되고 난 뒤 부산 중구 대청동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건물에 미문화원이 들어선 것은 1949년 7월이었다. 그러다 2003년 7월 3일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