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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언종 지산파 금강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26
한자 新義眞言宗智山派金岡寺
영어의미역 Jisanpa Geumgangsa Temple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4가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정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창건자 견전정조(見田政照)
건립 시기/일시 1898년 5월연표보기 - 건립
개칭 시기/일시 1910년 - 금강사로 개칭
최초 설립지 신의진언종 지산파 금강사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4가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었던 일본불교진언종 소속 사찰.

[개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개척하는 과정에서 불교나 신도 등 종교를 앞세워 정신적, 문화적 침투를 도모하는 한편 아래로부터 조선의 민중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1877년(고종 14) 9월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으로 진출한 정토진종(淨土眞宗) 오오타니파[大谷派]는 호국(護國)·호법(護法)의 일치를 표방하면서 포교를 개시하였고, 그 뒤를 이어 일련종(日蓮宗)이 포교를 시작하였다. 청일 전쟁을 계기로 정토진종 혼간지파[本派]와 정토종(淨土宗)이 새롭게 진출하였고, 이어 진언종(眞言宗)과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등이 조선으로 진출하여 별원과 포교당 등을 만들고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금강사(金岡寺)는 이러한 흐름 속에 일제 강점기 일본 불교의 한국 포교 계획으로 세워진 신의진언종 지산파(新義眞言宗智山派)의 사찰이다. 진언종은 고승 무장(武藏), 고야산(高野山) 주지 지하조림(志賀照林)을 개조(開祖)로 하여 크게 포교에 힘썼으며, 한국 각지에 10여 개의 말사와 포교소를 두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1898년(고종 35) 5월 경내에 대사당(大師堂)을 건립하였다. 영상(靈像)을 본산에 청구하였는데, 총본산 지적원(智積院)은 권대승정(權大僧正), 지하조림에게 관장 대리(管長代理)를, 견전정조(見田政照)에게 상재 포교사(常在布敎師)를 명하여 미리 고야산 별격본산 용천원(高野山別格本山龍泉院)에 영상을 안치해 두었다가 홍법 대사(弘法大師)의 존상을 가져와서 입불식을 거행하였다.

1910년(순종 4) 3월 8일 금강사라 칭하였다. 1910년 4월 13일 총본산 지적원이 독립 자영을 승인하면서 고야사 금강사라는 이름을 내리고, 견전정조를 주직에 임명하였다. 1913년 2월 1일 본당을 기공하여 1914년 5월 10일 완공하였다. 총 공사비가 1만 7000엔이었다.

[활동 사항]

종교 활동, 포교를 주로 하였으며, 매년 3월 21일 대사의 기일에 대사어기 법요(大師御忌法要)를 행하는데, 대사어기 법요 당일에는 관례로 대사 신앙을 가진 시내 요정(料亭)에서 영장(靈場)[신령이나 부처를 모신 신령스러운 곳] 참배자에게 차와 과자를 대접하였다. 뒷산에 4국 88개소의 영장을 설치하였다. 1906년 당시 절영도, 초량, 부산진 등에 출장소를 두었다. 부산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있어 봄날 행락지로도 유명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일본 불교가 침투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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