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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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佳里- |
영어의미역 | Shell Mound in Suga-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698-1|1605-2|1602-1|1581-2|1582|1584|1551-1|1551|1543-1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김은영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일대에 있는 신석기 시대조개더미.
[위치]
수가리 조개더미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581-2번지 일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조만강을 끼고 김해 평야가 펼쳐져 있는 금병산의 북쪽 비탈면 끝 부분에 입지하고 있다. 금병산의 반대쪽 비탈에는 범방동 신석기 유적이 위치한다. 발굴 당시의 행정 구역상 소재지는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가동 마을이었는데, 부산 경남 경마 공원이 들어서면서 2000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현재의 행정 구역상 범방동 가동 조개더미로 명칭이 변경되어야 하지만, 수가리 조개더미는 이미 정착된 명칭이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수가리 조개더미는 1970년대 초 부산대학교 박물관의 남해안 선사 유적 지표 조사를 통하여 처음으로 확인되었으며, 이후 부산~마산 간 고속 도로 건설 공사 부지에 포함되자 1978년 6월 9일~8월 16일과 1979년 3월 5일~5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긴급 구제 발굴이 이루어졌다. 3구 조개더미를 기준으로 유적의 층위는 대체로 6개 층으로 나뉜다. Ⅰ·Ⅲ·Ⅴ층은 굴을 주체로 하는 순패층[純貝層]이고, Ⅱ·Ⅳ·Ⅵ층은 흑갈색 부식 토층이다.
보고서에서는 각 층에서 출토된 토기를 기준으로 하여 3개의 문화층으로 나누었다. 가장 이른 시기인 제1문화층에는 Ⅴ층과 Ⅵ층이 속한다. 출토 유물은 빗살무늬 토기와 붉은 칠 토기, 뗀석기, 흙 제품[土製品], 뼈제품[骨角器] 등이다. 토기의 형태는 바리와 [손잡이 달린] 항아리 등이며, 바닥은 대부분 뾰족 밑이고 납작 밑이 1점 나왔다. 제1문화층에서 출토된 토기에는 무늬 새기개를 누른 후 그었다가 종결할 때 다시 눌러서 떼는 방법으로 새긴 기하학적 무늬가 많은데, 이것을 태선 침선문(太線沈線文)이라 부른다. 이러한 태선 침선문 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제1문화층 출토 토기에는 수가리 Ⅰ식 토기라는 형식명이 붙여졌다.
제1문화층에 속하는 바닥층에서는 수가리 조개더미에서 유일하게 집석 유구(集石遺構) 1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정연하지 못한 원형이고 지름 150㎝ 정도이다. 집석 유구를 구성하고 있는 깬 돌이 대부분 불에 달구어진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를 굽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제2문화층에는 Ⅲ·Ⅳ층이 속하며 퇴화된 빗살무늬 토기, 갈돌·갈판·숫돌[砥石] 등의 석기, 찌르개, 조개 팔찌 등이 출토되었다. 제2문화층에 속하는 퇴화된 빗살무늬 토기는 무늬가 단순하며 스치듯이 조잡하게 그어졌다. 이러한 무늬를 퇴화 침선문(退化沈線文)이라 하는데, 그릇 위쪽에만 새기고 제1문화층에서 보이던 복합 무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와 같은 퇴화 침선문 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제2문화층 출토 토기를 수가리 Ⅱ식 토기라 부른다.
제3문화층에는 Ⅰ·Ⅱ층이 속하며, 겹구연·홑구연 토기와 간 돌도끼[磨製石斧]·돌끌[石鑿]·흑요 석제 화살촉, 그물추[漁網錘], 가락바퀴[紡錘車] 등이 출토되었다. 겹구연 토기[二重口緣土器]와 홑구연 토기에는 무늬가 없는 것이 많아졌으며, 무늬를 새길 경우에는 주로 짧거나 긴 사선문(斜線文)을 새겼다. 항아리 모양 토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제3문화층 출토 토기를 수가리 Ⅲ식 토기라 부른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해서 제1문화층에서 기원전 3350~2700년, 기원전 3320~2780년, 기원전 3202~2490년, 제2문화층에서 기원전 3030~2610년, 기원전 2910~2490년, 제3문화층에서 기원전 1740~1420년, 기원전 1440~1030년이라는 절대 연대가 나왔다.
[출토 유물]
수가리 조개더미에서 나온 동물 유존체로는 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순 굴층인 Ⅴ·Ⅲ·Ⅰ층에서는 상층으로 갈수록 굴의 크기가 작아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굴 외에 극히 적은 양의 바지락조개와 대합 등이 나왔다. 생선 뼈는 대구·농어가 가장 많았고 가오리·감성돔·복어 등이 나왔으며, 바다짐승 뼈로는 돌고래·고래가 검출되었다. 육지 동물 뼈는 사슴이 주체를 차지하고 그 외에 멧돼지·오소리·너구리·개·큰 곰·고라니·소·꿩의 뼈가 나왔다.
수가리 조개더미와 다른 조개더미를 비교하였을 때 전체 발굴 용적에 비해서 생선 뼈와 동물 뼈의 비중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수가리 조개더미가 입지한 내만은 굴 발달에 적합한 장소이었으며, 굴의 대량 입수는 상대적으로 사냥과 고기잡이에 대한 열의를 약하게 하였다고 추정된다.
한편, Ⅱ층 상부와 Ⅳ층 속에서 2개의 마모 조개더미 층이 확인되었는데, 바닷물의 유동에 의해 마모된 것으로 파악하고 신석기 시대 당시의 해수면이 해발 7m 전후까지 높아졌다는 증거라고 추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마모 조개더미 층은 지하수에 의한 풍화 현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해수면 변동과는 관계없는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출토 유물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수가리 조개더미의 발굴을 통해 구축된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편년 체계는 새로운 자료에 의해 약간씩 수정·보완되어 왔지만, 그 변천 과정의 큰 틀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수가리 조개더미의 연구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