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041 |
---|---|
영어의미역 | This Parcel of Rice Field of Three to Four Majigi[Korean Measure of Farmland]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범방동|기장군 철마면|일광면|해운대구 반송동|중구 영주동 |
집필자 | 곽지숙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중구, 해운대구, 기장군 등지에서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노동요.
[개설]
「세 마지기 이 논배미」는 강서구, 중구, 해운대구, 기장군 등지에서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겨 심는 과정에서 주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즉 모를 찌는 작업 후 논에서 모내기를 할 때 흥을 돋우고 힘든 것을 잊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김승찬·박경수·황경숙 등이 집필하고 세종출판사에서 간행한 『부산 민요 집성』에 실려 있다. 이는 1991년 2월 27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성동 천성 마을에서 주민 이노길[여, 68]와 김말분[여, 63], 1996년 6월 8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2동 운봉 마을에서 주민 김성복[남, 83], 1997년 1월 14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에서 주민 김성학[여, 66세], 1997년 1월 17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서 주민 이도영[여, 77세], 2000년 10월 1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가리새 마을에서 주민 김금덕[여, 60] 등으로부터 각각 채록한 것이다.
또한 2010년 류종목이 집필하고 민속원에서 간행한 『현장에서 조사한 구비 전승 민요』-부산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9년 10월 10일 김상용·백경숙·김소연·곽영희·임소영 등이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1동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조성섭[남, 78]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세 마지기 이 논배미」는 주고받기식의 교환창으로 부르는 것이나 채록 당시에는 주로 내리 부르기식의 독창으로 불렀다. 사설은 대구(對句)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1. 이노길과 김말분의 「세 마지기 이 논배미」
서마지기 이논빼미/ 반달겉이도 심어가네// 니가무슨 반달이냐/ 초승달이 반달이지[천성동].
2. 김금덕의 「세 마지기 이 논배미」
서마지기 저논빼미/ 반달같이 떠나가네// 그게뭐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범방동].
3. 김성학의 「세 마지기 이 논배미」
샛별같은 저밭골에/ 반달둥실 떠나온다// 지가무슨 반달이냐/ 초승달이 반달이지[철마면].
4. 이도영의 「세 마지기 이 논배미」
새발같은 점심방티/ 반달같이도 떠나오네// 그게야무슨 반달이고/ 초승달이 반달이지[일광면].
5. 김성복의 「세 마지기 이 논배미」
되박같은 이밭골에/ 반달같이 떠나오네// 지가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가 반달이지[반송2동].
6. 조성섭의 「세 마지기 이 논배미」
서마지기 이논빼미/ 반달같이도 떠나간다// 저가무엇이 반달이라/ 초승달이 반달이지[영주1동]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내기를 할 때는 먼저 논을 가로질러 못줄을 하나나 두 개 치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따라 늘어선다. 다음에 못줄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어 나간다. 일단 모심기를 시작하면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동시에 모를 심어야 한다. 따라서 모심기를 할 때에 선후창이나 교환창으로 노래를 불러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손을 맞추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남자 패와 여자 패로 나누어 부르기도 했다.
[현황]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호흡을 맞추어 모내기를 해야 했던 까닭에 「세 마지기 이 논배미」와 같은 모심기 노래를 불렀다. 최근에는 모심기 또한 기계화되어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세 마지기 이 논배미」 또한 점차 전승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세 마지기 이 논배미」는 모심기 작업 중에 부른 노래로 공동으로 모심기를 하던 옛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