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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정승 골목」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989
한자 黃政丞-
영어의미역 An Alley Near the Mansion of Prime Minister Hwa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집필자 곽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민담
주요등장인물 황씨|처녀|장판서|장판서 아들|점쟁이
모티프유형 바보 온달|지명 유래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2년 7월 27일 - 김승찬·김경숙 등이 김종만[남, 70]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12월 30일 - 『한국 구비 문학 대계』-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편에 「삼정승 골목」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채록지 녹산면 송정리 -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에서 황 정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황 정승 골목」은 미천한 황씨가 우여곡절 끝에 장판서의 딸과 결연해서 훌륭한 정승이 되었다는 출세담이고, 그가 살던 골목을 ‘황 정승 골목’이라고 하였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12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편에 「삼정승 골목」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상 「황 정승 골목」이 맞다고 판단된다. 이는 1982년 7월 27일 김승찬·김경숙 등이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구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송정리]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김종만[남, 70]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옛날 어느 마을에 황씨 성을 가진 양반이 살고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황씨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서른이 되도록 장가도 못가고 앞으로 살 방도를 찾기도 힘들었다. 그는 서울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전 재산을 털어 복채 백 냥을 가지고 그 점쟁이를 찾아갔다. 황씨가 점쟁이에게 백 냥을 주고 점을 봐 달라고 하자 점쟁이가 대뜸 황씨를 나무에다 거꾸로 매달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이 밤이 될 때까지 매달려 버둥거리다가 간신히 나무에서 떨어졌다. 이미 깊은 밤이 되었기에 하룻밤 신세를 질만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사람이 죽으면 임시로 매장을 해 두는 집으로 가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황씨가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거기에 관이 하나 있었다. 뚜껑을 살짝 열어 보니, 거기에 웬 정신을 잃은 어린 처녀가 한 사람 누워 있었다. 그는 처녀를 업고 가까운 주막으로 가서 따뜻한 방에다 처녀를 눕히고 계속 몸을 주물러 주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처녀는 황씨에게 장판서 댁으로 가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황씨는 처녀의 말을 전하려고 장판서의 집으로 갔는데, 그 집의 종들이 황씨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마침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고 상심하여 집 안을 서성이고 있던 장판서가 문 밖이 소란하여 나왔다가 황씨를 마주하게 되었다. 황씨는 장판서에게 그의 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다. 장판서는 주막으로 아들을 보내 딸을 집으로 데려왔고, 황씨에게 보답으로 그 집에서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월이 흘러 장판서의 딸이 시집을 갈 나이가 되어 어느 대감댁에서 매파가 왔다. 장판서의 부인이 딸에게 혼처가 들어왔다고 했더니, 그녀는 자신은 이미 배필이 정해져 있어 그 댁으로 시집을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장판서의 부인이 놀라서 그 까닭을 물었는데, 처녀는 자신이 주막에 있을 때에 황씨가 몸을 모두 주물러 손을 안 댄 곳이 없으니 이미 자신은 황씨의 아내라는 것이었다. 귀한 딸을 황씨에게 보낼 수 없었던 장판서 부부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장판서의 딸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버렸다. 한 번 잃을 뻔 했던 딸을 다시 죽일 수가 없었던 장판서 부부는 어쩔 수 없이 황씨에게 딸을 시집보냈다.

양반이기는 했지만 배운 것이 없었던 황씨는 장판서의 아들인 처남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았다. 그는 황씨를 죽이려고 일부러 밤마다 귀신이 나와서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집을 헐값에 사서 누이는 다음날 보내 주겠다고 하고 황씨를 홀로 그 집으로 보내 버렸다. 밤이 되어 황씨가 잠자리에 들려는데 어디선가 집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어 보았더니 은전과 금전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황씨는 보물을 모아들고서 다시 처갓집으로 갔다. 황씨가 가지고 간 돈은 평생을 먹고 살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었다. 처남은 그것을 보고 황씨에게 누이를 보내 주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하루는 황씨의 부인이 황씨를 불러 글을 배워 보지 않겠느냐고 묻고, 그날부터 황씨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황씨는 일취월장했고, 마침내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다. 가진 돈이 많고 마음이 순진했던 황씨는 누구보다 정사를 잘 다스렸고, 그 명성으로 정승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 이후에 황씨가 살았던 그 골목을 황 정승 골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황 정승 골목」의 주요 모티프는 ‘바보 온달’, ‘지명 유래’ 등이다. 「황 정승 골목」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하는 「온달전」의 내용을 모티프로 한 민담이다. 보잘 것 없는 남자가 귀한 여인을 만나 성공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백제의 무왕 설화도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적인 유형과 달리 「황 정승 골목」의 주인공인 황씨가 영민한 부인을 맞이할 수 있었던 계기로 점쟁이의 점복이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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