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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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谷庵 |
영어의미역 | Bulgokam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66번길 18[대연4동 949-1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원영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있는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불곡사(佛谷庵)은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인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이름이 있다. 지명은 우리 조상들의 삶이 배어 있는 역사의 자취일 뿐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아름다운 설화들을 품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 또는 계곡에서 불곡(佛谷) 또는 부처골이라는 지명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대개 전해 오는 설화나 구전, 또는 출토 유물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다. 불곡사의 창건 유래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불곡사은 조선 후기에 이 일대를 관장하던 고을 원장인 문기우가 꿈에서 부처를 뵙고 나서 우연히 불상 하나를 발견하여 신앙적 의지처로 삼으면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불사를 거듭하며 전통 도량으로 자리 잡았으나 1978년경 부산 문화 회관의 건립 계획이 발표되면서 강제 이주를 당해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문기우가 발견한 불상을 마을 사람들이 미래의 구원의 대상으로 여겨 미륵불로 이름 붙였고, 이때부터 그 뒷산을 미륵산 또는 미력산, 불상이 발견된 계곡을 불곡이라 이름 지었다.
[활동 사항]
현재의 불곡사은 주택 밀집 지역 한가운데 있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산속에 자리한 일반적인 사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2층 법당에 모셔진 미륵불상을 보기 위하여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불곡사은 2층 규모의 가정집 형태를 하고 있어 얼핏 보면 현대식 건축물로 보이지만, 실은 1, 2층이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1층 요사는 전형적인 가정집 형태이나 2층은 이전 법당을 그대로 수평 이동한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계 익공식 구조이며 외벽에는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를 배경으로 한 100명의 동자가 그려져 있다. 이는 승려 만공(滿空)[1871~1946]의 상좌로서 금강산 유점사에 있다가 70여 년 전 불곡사 주지를 지낸 승려 강용환의 유지를 받든 것이다. 사찰 내부 천장에는 이주 후 해체 복원 과정에서 새로이 조성한 10명의 관음보살과 10명의 나한이 장엄하게 표현되어 있다.
대웅전에는 이전할 때 모셔 온 주 존불인 미륵상과 이전 후 조성한 후불탱, 지장탱, 칠성탱이 상단과 그 좌우에 있다. 또 80년 전 승려 최도성에 의해 조성된 현왕탱과 독성상, 지장보살 좌상과 1978년 승려 황정호에 의해 조성된 신중탱, 산신탱, 독성탱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없으나 불곡사에 소장된 유물을 살펴보면 먼저 미륵탑이 있다. 이 탑은 원래 1932년 불곡사 터에서 조성되었다가 이전과 함께 모셔 온 칠층 석탑으로 첫 번째 면석에 미륵불을 표현하고 있다. 이 미륵불은 불곡사의 주불인 2층 법당의 불상을 나타낸 것으로 주먹 쥔 왼손을 가슴에 올린 채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형상을 하고 있다. 1955년에 조성된 오층 불사리탑은 보존 상태가 양호한데 내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며 각 면석에는 무궁화 꽃이 양각되어 있다.
불곡사 미륵불상은 조선 후기에 지금의 부산 문화 회관 자리인 논밭 사이의 물길에서 발견된 석조 불상이다. 조성 연대나 조성한 사람 등은 알 수 없지만 이 일대에서 삼국 시대 토기나 기와 조각이 계속 발견되고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성벽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일대에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표현이 섬세하지 못하고 수인 또한 제대로 알 수 없어 미륵불로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불곡사 정원에 있는 창건비에 미륵불로 기록되어 있어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1978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주한 후 개금된 채 모셔져 있으며 좌우 협시 보살상 없이 단독상으로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