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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920
한자 粉靑沙器-
영어의미역 Grayish-blue-powdered Celadon Kiln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기장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경자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기장군에 있는 조선 시대의 분청사기 가마터.

[개설]

가마는 흙을 원료로 하여 만든 도자기를 굽기[燔造] 위한 밀폐된 구조물을 가리키는 우리말로, 한자로는 ‘요(窯)’라고 한다.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청자·분청사기(粉靑沙器)·백자를 생산한 가마터는 ‘요지(窯址)’라고 한다. 가마의 종류는 지표면을 기준으로 가마 바닥[窯床] 및 벽의 위치에 따라 지하식 가마[地下式窯]·반지하식 가마[半地下式窯]·지상식 가마[地上式窯]로 구분되며, 지상식 가마는 가마 칸[室]의 유무와 형태에 따라 단실 가마[單室窯]·분실 가마[分室窯]·연실 가마[連室窯]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 고려 시대 이후 도자기를 구운 가마는 대부분 지상식의 단실 가마로, 아궁이에서 시작된 열이 가마 바닥의 경사도를 따라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횡염식(橫焰式) 굴가마[등요(登窯)]이다.

[변천]

조선 시대 15~16세기 전반에 분청사기를 생산한 가마는 횡염식 굴가마로, 불기둥이 없는 단실 가마이거나 가마 칸의 내부에 1~3개의 불기둥이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분청사기 가마는 전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들 분청사기 가마터에서는 가마가 운영된 시기와 관련하여 1430년대 이전에는 상감 기법 및 낱개의 도장[印]을 이용한 단독 인화 기법 위주의 분청사기를, 1420년(세종 2)~1450년(세종 32) 사이에는 여러 가지 명문이 표기된 집단 연권형(集團連圈形) 인화 기법 위주의 공납용 분청사기를 제작하였다. 1440년(세종 22)~1470년(성종 1)을 전후한 시기에 운영된 가마에서는 귀얄 또는 덤벙 기법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함께 제작하기도 하였다.

[부산의 분청사기 가마]

부산 지역에 위치한 분청사기 가마는 남산동 자기 가마터[南山洞磁器窯址]와 기장군 장안읍의 상장안 유적(上長安遺蹟), 하장안 유적 분청사기 가마터[下長安粉靑沙器窯址] 등이며, 이 중 상장안 유적과 하장안 유적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굴 조사되었다. 남산동 자기 가마터에서는 상감 기법 및 낱개의 도장을 이용한 단독 인화 기법 위주의 분청사기와, 세종 연간인 1418년~1450년에 각 지역별로 현물의 세금으로 중앙 여러 관청에 상납한 공납용 자기의 양식에 해당하는 집단 연권형 인화 기법의 분청사기가 확인되어 15세기 전반에 요업 활동을 한 가마임을 알 수 있었다.

상장안 유적과 하장안 유적 분청사기 가마터는 무오년(戊午年)인 1018년(현종 9) 이래 울주(蔚州)에 속하였다가, 조선 전기인 태종~세종 연간에는 경상도 경주부에 속한 기장현(機張縣) 지역으로 현재는 부산광역시에 속한다. 상장안 유적에서는 공납용 자기로 ‘울산 인수부(蔚山仁壽府)’가 표기된 인화 기법 분청사기와 귀얄 기법 분청사기, 그리고 적은 양의 백자를 제작하였으며, 하장안 분청사기 가마터에서는 손가락을 이용하여 백토를 분장한 쇠퇴기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함께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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