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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865
한자 釜山消防組
영어의미역 Busan Fire Service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소방 기구
설립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정의]

근대 시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부산경찰서 소속 소방 기구.

[설립 목적]

부산소방조는 1894년 부산의 일본 거류민이 증가하고 이와 병행하여 건축물 또한 증가하자 방화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설립되었다.

[변천]

1894년 부산소방조의 설립과 함께 소화전을 설치하고 소방 경통(卿筒), 수동식 펌프를 갖추었으며, 화재 진화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증기 경통 2대를 구입하여 비치하였다. 1901년 4월 영사관 명령 제2호에 의해 ‘부산항 일본 소방조 규칙’을 제정하고 종래의 소방조 조직을 개편하였다. 1906년 일본 경시청 소방본부장을 지낸 송정무(松井茂)가 부산이사청 이사관으로 부임하자 상설 소방수 제도를 세우고 경시청으로부터 소방 주임을 초빙하여 소방 훈련을 실시하는 등 소방 조직을 혁신하였다.

1909년 9월 구산이평태(龜山理平太) 부산이사청 이사관이 소방조 규칙을 재개정하여 다시 조직하고 조원의 수당, 비상 신호 등을 개선하였으며 수도 설비와 시구 개정의 정돈과 함께 소방 설비의 면목을 일시하였기에 화재의 수가 감소하였다. 1911년 민간 차원의 의용 소방조가 발족되었고 부산의 일본인 유지들이 유지비를 부담하였다. 1914년 민간의 의용 소방조가 부산소방조 제7부에 편입되었다. 1915년 조선총독부령으로 소방조 규칙이 발포되어 소방조의 지휘 감독은 부산경찰서장이 맡았고 비용은 부산부에서 부담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34년의 조직과 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부산소방조는 그 아래 총 5부의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조두와 부조두를 두고 그 아래 부장 5명과 소두 5명, 상비 소두 2명, 상비 소방수 53명, 의용 소방수 105명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부산소방조의 대표적인 인물은 오랫동안 소방조 조두를 맡았던 소궁만차랑(小宮萬次郞)이었다. 소방조 산하의 5개 부는 관할 지역을 나타내며 그 소재지는 제1부 본부와 본정 2정목, 제2부 부민정, 제3부 초량정, 제4부 좌천정, 제5부 영선정이었다. 당시 소방조가 보유한 소방 시설은 망루 및 경종 7기, 소방 자동차 10대, 손으로 끄는 수관차(水管車) 7대, 가스윤즉통[瓦斯倫喞筒] 1대였으며 부산세관 및 부산부의 소유인 선박 5척도 보조 기관으로 이용하여 화재 진압에 나섰다.

[의의와 평가]

식민 도시 부산의 대표적 근대적 기구와 시설의 하나로, 도시사 및 지역사[향토사]연구의 대상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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