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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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米穀證券信託會社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창신동 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석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창신동 1가에 있었던 신탁 회사.
[설립 목적]
부산미곡증권신탁회사는 1922년 3월 금융 신탁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 전시 호황과 함께 1918년 3월 30일 조선총독부 법령 제28호로 「조선은행법」이 개정되어 ‘신탁의 업무’라는 영업 과목이 추가된 것이 금융 신탁업 활성화의 계기였다. 부산미곡증권신탁회사는 1920년 설립된 부산신탁회사와 함께 1920년대 부산 신탁업계의 양대 산맥이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300만 원[75만 원 불입]이었고, 1931년 신탁 합동으로 해산될 때까지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300만 원의 공칭 자본금은 당시 조선 최대 규모였다. 부산 지역 경제계를 주도했던 주요 일본인 자본가들인 오이케 추스케[大池忠助],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사카다 분키치[坂田文吉],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郎] 등이 주로 출자하였다. 최대 주주인 오이케 추스케가 사장으로 경영권을 장악했고, 초창기 부산 3대 일본인 자본가에 꼽혔던 사카다 요이치[坂田與一]의 아들 사카타 분키치가 전무 취체역으로 실질적인 경영을 담당하였다.
[변천]
부산미곡증권신탁회사는 조선총독부가 1930년대 초반 추진한 ‘신탁 합동’에 의해 1931년 해체되었다. 신탁 합동은 조선총독부가 기존 신탁업의 통폐합을 통해 통제 강화를 목표로 한 것으로 1931년 제정·공포된 「조선신탁업령」에 기초한 것이었다. 명분은 영세한 신탁 회사의 난립을 방지하고 취급 신탁 업무의 복잡한 표기 등을 개선하여 신탁업을 건전하게 지도 육성시킨다는 것이었으나 군국주의 확산에 따른 국가의 금융 통제 필요성이 1차적 목적이었다. 「조선신탁업령」에 의해 부산에는 부산신탁회사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1933년 11월 조선신탁주식회사에 통합되었다. 조선신탁주식회사는 1933년 1월 7일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이 중심이 되어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설립된 것으로 조선의 신탁업계 전부를 통합하여 단일 회사로 군림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미곡증권신탁회사의 주요 업무는 금융업, 창고업 및 운송업, 미곡 및 일반 상품 위탁 판매와 매매 중개, 곡물에 대한 담보 대부, 일반 신탁에 관한 업무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주요한 신탁 회사였으므로 일제 강점기 금융사 연구, 특히 신탁업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회사 설립과 경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