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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751
한자 釜山福泉洞古墳群-號出土甲冑
영어의미역 Armor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 Sites 10 and 11 in Bokcheon-dong in Busan
이칭/별칭 부산 복천동 10·11호분 출토 갑주,복천동 10·11호분 출토 갑주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6[복천동 50]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현주 2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갑주|갑옷|투구|부속 갑
재질
출토|발굴 시기/일시 1980년~1981년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 대한 제1차 발굴 조사 시 발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6월 9일연표보기 - 부산 복천동 고분군 사적 제273호로 지정
현 소장처 부산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현 소장처 복천박물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현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232
출토|발견지 부산 복천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갑옷과 부속 갑, 그리고 투구 일체.

[개설]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은 우리나라 삼국 시대 고분 중 갑주 자료가 가장 많이 출토된 유적이다. 그중에서 구릉의 정상부 능선에 위치한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11호는 금동관, 장식 대도, 경식, 다량의 덩이쇠, 말갖춤[馬具] 등이 출토된 가장 큰 대형 무덤 중 하나이다.

1980~1981년에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 대한 제1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주곽인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에서는 종장판 투구[縱長板胄]와 비늘 갑옷[찰갑(札甲)], 목 가리개[경갑(頸甲)], 팔 가리개[비갑(臂甲)] 등으로 구성된 한 세트가, 부곽인 10호에서는 종장판 정결 판갑(縱長板釘結板甲)과 종장판 투구로 구성된 한 세트가, 그리고 말 투구[마주(馬胄)]가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은 5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출토 상태가 매우 양호할 뿐 아니라, 갑옷과 투구 제작의 정형을 갖춘 완성형 세트로 삼국 시대의 갑주 연구를 진전시킨 실마리를 제공한 유적이다.

[형태]

주곽인 부산 복천동 고분군 11호에서는 무덤의 주인공 머리 쪽에서 비늘 갑옷과 그 부속 갑옷들이 출토되었다. 비늘 갑옷은 부속 갑을 완전히 갖추기는 하였으나 원형 복원은 어려워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다. 확인된 소찰(小札)[미늘: 갑옷에 다는 비늘 모양의 가죽 조각이나 쇳조각]은 모두 8종으로, 몸통을 두르는 동갑(胴甲), 허리 아랫부분을 보호하는 상갑(裳甲), 어깨 부분을 덮는 상박갑(上膊甲), 다리를 보호하는 대퇴갑(大腿甲) 등이다. 동갑은 동환식(胴環式)으로 추정된다. 소찰은 2.5x9㎝ 크기로 상원 하방형(上圓下方形)을 띠며, 우측 소찰이 좌측 소찰 위로 중첩되게 가로로 엮어져 있다. 상·하단의 연결은 단면이 ‘S’ 자형으로 휘어진 허리 부분인 요찰(腰札) 위로만 하더라도 6단 이상으로 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아랫단이 윗단에 위로 중첩되게 설계되었다.

목 가리개는 29매의 종장 방형 철판을 못으로 고정하였으며, 좌우에 고리 경첩을 사용한 개폐 장치가 있다. 특징적인 점은 지판에 2공 1조의 구멍을 뚫어 놓고 이 중 구멍 하나만 사용하여 못을 박았다는 점과, 경갑 가장자리를 가죽으로 엮어 끝마무리한 것을 그 위에 다시 철판으로 감싼 철포 복륜(鐵包覆輪)을 행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삼국 시대에 전쟁이 없을 때 군인들에게 병기 수리가 주요한 과제였다는 기록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팔 가리개는 3매의 철판으로 이루어졌으며, 몸통의 상부에는 3단의 나뭇가지 문양[樹枝文]으로 도드라지게 타출(打出)하였다. 양쪽 측판은 길이가 다르며, 몸통과의 연결에 가죽띠 경첩을 사용하였다. 팔 가리개 전면의 가장자리는 철판 끄트머리를 밖으로 약간 꺾어 복륜(覆輪)[끝마무리]한 것처럼 처리하였다.

투구는 단면이 ‘S’ 자로 휘어진 종세 장방형(縱細長方形) 철판 35매를 가죽으로 이어 붙인 종장판혁철주(縱長板革綴冑)이다. 정수리 부분에는 반구형(半球形)의 복발(覆鉢)[대접이 엎어진 모양의 뚜껑]을 얹었으며, 복발 내부에는 길이 5.5㎝의 관이 부착되어 있는데 장식을 위한 술을 다는 장치라고 추정된다. 투구에는 양쪽에 볼 가리개와 뒷목[首尾部] 가리개가 부착되었는데, 여기에 사용된 소찰은 길이 4.2㎝ 전후의 장형으로 가죽을 엮어 연결하였다.

부곽인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호에서는 주곽에서 비늘 갑옷이 출토된 것과는 달리 판갑이 출토되었다. 판갑은 세로로 긴 장방형 철판을 못으로 고정한 종장판 정결 판갑으로, 좌전동 3매, 우전동 2매, 후동 5매로 구성되었다. 개폐 방식은 좌우 개폐식으로 가죽띠 경첩을 사용하였다. 후동부 상부에는 후경판(後頸板)이 있는데, 횡으로 장방형 철판 2매를 이어 붙였으며, 가장자리를 가느다란 철판 띠를 돌려 못으로 고정하였다. 또한 후동부 상부에는 2매의 고대판이 있는데, 그중 상판에는 궐수문(蕨手文)이 장식되었다. 종장판 투구는 단면이 ‘S’ 자형으로 휘어진 철판을 사용한 점은 주곽의 것과 동일하나, 상부의 철제 복발과 양옆의 볼 가리개가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말 투구는 얼굴 덮개부 6매, 챙 2매, 양쪽 귀 가리개 각각 2매, 좌우 볼 가리개 각각 2매 등 총 16매의 모양이 다른 철판으로 구성되었다. 얼굴 덮개부와 볼 가리개는 가죽띠 경첩으로 연결하였다. 눈 구멍이 얼굴 덮개부와 볼 가리개에 걸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말 투구의 가장자리는 철판을 꺾은 절판 복륜으로 마무리하였다.

[특징]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11호 출토 갑주(釜山福泉洞古墳群十·十一號出土甲冑)는 삼국 시대의 갑옷 구성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부속구가 총집합된 유물이다. 부곽에서는 판갑 세트가 여타 토기 부장품들과 함께 출토된 반면, 주곽에서는 비늘 갑옷 세트가 중요 부장품으로 취급되어 주인공 머리맡에 놓인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팔 가리개인 비갑의 출토는 삼국 시대에 매우 한정적인데다, 비늘 갑옷 구성 내에 판갑계 팔 가리개로 제작된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회화로만 보아 왔던 완전 무장한 개마 인물(鎧馬人物)이 무덤의 부장품인 실물 자료로 출토되어,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11호 출토 갑주는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더구나 부곽의 갑옷 갖춤새에 비해 주곽의 갑옷 세트는 장식성이 뛰어나고, 구조적으로도 편리성을 추구한 형태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부속 갑을 갖추고 있어, 갑옷 역시 치레걸이[장신구]와 마찬가지로 착장자에 따른 사회적 규범이 달랐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더구나 이들 갑옷 구성은 함께 출토된 말갖춤류[마구류]와 조합을 이루면서 개마 무사의 위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고대 갑주 연구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유구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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