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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677
한자 白磁
영어의미역 Whitte Porcelai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윤희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조선 시대의 백토로 만든 도자기.

[개설]

조선 전기 왕실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던 백자(白磁)는 지방에서도 일부 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부산 지역에서도 몇 곳이 확인된다. 부산 지역의 백자가 출토된 곳은 상장안 유적(上長安遺蹟), 남산동 자기 가마터[南山洞磁器窯址], 용소리 백자 가마터[龍沼里白磁窯址], 두명리 백자 가마터, 동래 마안산 유적, 교리 유적(校里遺蹟), 동래읍성(東萊邑城), 북구 화명동 898-9번지 유적 등이다.

[상장안 유적]

상장안 유적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2009년에 조사한 가마터로, 부산~울산 간 국도 제14호선을 따라 장안사(長安寺)로 향하는 도로 우측 편의 구릉 경사면에 위치한다. 가마에서는 천장부를 제외한 가마의 구조, 개축, 배연구, 판축부 등이 확인되어 분청사기 가마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제공되었다. 출토되는 유물은 대부분이 분청사기편이지만 일부 백자도 확인된다. 특히 분청사기와 백자를 포개 구운 흔적이 확인됨으로써 분청사기와 연질 백자의 소성 관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제작된 가마로 생각된다. 상장안 유적은 부산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백자의 생산과 소비 유통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생산 유적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남산동 자기 가마터]

남산동 자기 가마터금정산성 제4 망루(金井山城第四望樓)에서 금정구 남산동 쪽으로 내려오는 낮은 구릉에 위치하며, 지표 조사 결과 2~3기의 가마가 잔존할 것으로 추정된다. 채집된 유물 가운데 상감 분청사기편, 백자편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조업 시기가 조선 전기에서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가마로 생각되지만, 현재 유적은 계속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용소리 백자 가마터]

기장군 장안읍 용소리에 위치한 용소리 백자 가마터는 부산~울산 간 국도 제14호선 상의 용소 마을 구릉에 위치한다. 가마는 구릉 남사면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백자편을 비롯하여 도지미, 가마 벽체 편 등이 확인되었다. 16세기 후반~17세기 중반에 제작된 지방 백자 가마터로 추정되는데, 현재 농로 확정과 과수원 등으로의 변경이 진행 중이어서 조사가 시급한 상태이다.

[두명리 백자 가마터]

기장군 정관읍의 두명리 백자 가마터는 정관 신도시 진입로 주변으로 용천산 소구릉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백자편과 흑유 자기, 도지미, 가마 벽체 편, 그리고 1m 이상의 유물 퇴적층도 확인된다. 수습되는 백자는 발, 접시, 잔 등의 생활 용기로 용소리 백자 가마터와 마찬가지로 16세기 후반~17세기 중반에 제작된 지방 백자 가마터로 추정된다. 두명리 백자 가마터 역시 유적이 훼손되고 있어 본격적인 조사가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생산 유적은 일부이지만 그 외에 건물 터, 절터, 읍성, 분묘 등 다양한 소비 유적에서 백자가 확인되었다.

[동래 마안산 유적]

한국문물연구원에서 2009년에 조사한 동래 마안산 유적은 부산명륜3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이 추진 중인 다세대 주택 건립 예정 부지로, 조사 결과 건물 터, 배수로, 담장, 아궁이, 축대, 구상 유구, 우물 등의 조선 시대 생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다수의 기와와 자기 편이 출토되었다. 백자는 분청사기와 마찬가지로 발과 접시, 잔 등의 일상생활 용기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무문이며, 이외에 소편의 청화백자와 명문이 적혀 있는 백자편이 일부 확인되었다. 품질은 미백색의 연질 백자와 회백색[회청색]의 지방 백자가 대부분이지만, 그중 일부에서 양질의 회백색 치밀질 백토로 제작된 관요산 백자가 확인되고 있어 지방 백자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관요 백자와의 교류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중요하다.

[교리 유적]

교리 유적기장군 기장읍 교리 170번지에 위치하며, 복천박물관에서 조사한 유적이다. 통일 신라 시대 분묘 2기를 비롯하여 고려·조선 시대 분묘, 건물 터, 수혈, 집석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고, 그중 조선 시대 분묘에서 백자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백자는 대접과 접시 등의 일상생활 용기로, 15세기 후반~16세기에 경상도 지역에서 다수 확인되는 미백색과 회백색의 백자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백자는 조선 시대 분묘의 편년을 정립하고 유물의 소비지에 대한 연구로서의 결과를 축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래읍성]

동래읍성은 1979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이후 여러 차례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중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조선 전기와 후기의 읍성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도 백자편이 확인되었다. 백자는 건물 터에서 확인되며, 미백색의 연질 백자 저부 편과 사질 내화토를 받쳐 번조한 편들이 출토되었다. 읍성과 건물 터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유물로 주목된다.

[북구 화명동]

한국문물연구원에서 조사한 북구 화명동 898-9번지 유적은 아파트 재건축 부지에 위치한다. 금정산에서 낙동강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조성되었는데,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 1기, 조선 시대 회곽 묘 5기 및 움무덤[토광묘] 64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조선 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분청자, 백자와 청동제 그릇, 청동 시, 반지[지환], 동전 등이 있다. 분묘에서 출토되는 백자는 당시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기타]

이외에도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 민락동 유적, 용당동 유적 등 조선 시대의 생활 유적 등에서 백자가 빈번히 출토되고 있어 당시 문화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백자의 발달은 관요 백자뿐 아니라 지역 백자와도 상관관계가 있으며, 지방 백자의 연구는 그 지역의 공간을 매개로 살아 온 사람들의 역사이므로 주목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부산 지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된 백자는 중요한 고고학적 근거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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