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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연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615
한자 民族統一聯盟
영어의미역 People Unification Federa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생 통일 운동 단체
설립자 손병선|나택균
설립 시기/일시 1961년 초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최초 설립지 부산수산대학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3동 599-1지도보기

[정의]

1961년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에서 결성된 학생 통일 운동 단체.

[설립 목적]

민족통일연맹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운동에 부산 지역 대학생의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1960년 11월 1일 서울대학교에서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자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일어났다. 부산에서는 1961년 봄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에서 민족통일연맹이 설립되었다. 부산대학교민족통일연맹은 손병선[정치학과 4년]과 김배균이 중심인물이었고, 부산수산대학 민족통일연맹은 나택균[수산경제학과 4년]이 중심인물이었다. 설립 후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의 민족통일연맹은 1961년 5월 5일 결성된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약칭 민통전학련]에 참여하였다. 같은 시기 동아대학교에서도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결성에 이르지 못하였다. 부산 지역의 대학 민족통일연맹후진성극복학생연구회[약칭 후연회], 민주민족청년동맹 부산경남맹부,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약칭 민자통경남협의회]와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족통일연맹의 주요 활동은 통일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여 관심을 제고시킴으로써, 통일 운동에 대한 대학생의 참여를 견인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민족통일연맹후진성극복학생연구회와 함께 각종 강연회와 토론회를 대학별로 또는 대학 간의 연합 주관으로 개최하였다. 이는 후진성극복학생연구회가 부산 지역 대학 민족통일연맹의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따라서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의 민족통일연맹의 중심인물이 후진성극복학생연구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외에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의 민족통일연맹은 「데모규제법」과 「반공 임시 특별법」을 저지하기 위한 2대 악법 반대 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61년 3월 15일 결성된 ‘경상남도 반민주악법반대 학생공동투쟁위원회’는 민족통일연맹의 중심인물인 손병선, 나택균, 최석환[부산대학교 법학과 4년]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23일과 4월 13일 2대 악법 반대 집회를 개최하여 부산 시내 고등학생과 대학생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성토대회와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또한 민족통일연맹은 5월 13일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에서 주최한 ‘남북 학생 회담 환영 및 민족 통일 촉진 시민 궐기 대회’에 참석하여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이 주도하는 남북 학생 회담을 지지 환영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4·19 혁명 시기는 한국 현대사를 통 털어 통일 논의가 가장 격렬하게, 가장 전면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제기되었던 시기이다. 이 때 부산대학교와 부산수산대학의 민족통일연맹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 민주민족청년동맹 부산경남맹부와 함께 부산 지역 통일 운동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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