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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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毛羅-山雲水寺- |
영어의미역 | Unsusa Temple and Toad Rock in Mora Back Mountain Behind |
이칭/별칭 | 「운수사의 전설」,「두꺼비바위와 운수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
집필자 | 김현주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서 운수사와 두꺼비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모라 뒷산 운수사와 두꺼비 바위」는 절에서 박대당한 걸인이 앙심을 품고 두꺼비바위를 훼손하거나, 신도가 많아 귀찮아하던 주지가 두꺼비바위를 훼손하여 신도가 오지 못하게 막아서 사찰이 망하게 되었다는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1년 2월 23일 부산직할시 북구청·부산낙동향토문화원에서 간행한 『부산 북구 향토지』에 「운수사의 전설」, 「두꺼비바위와 운수사」라는 제목으로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와 제보 시기는 밝히지 않아 알 수 없다.
[내용]
운수사와 두꺼비바위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첫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 중엽에 한 걸인이 배가 고파 밥을 얻어먹기 위해 운수사에 들렀는데 주지가 문전 박대를 하자 그 걸인이 곡괭이를 들고 내려와서 운수사의 수호신인 두꺼비바위를 내려찍었다. 그리하여 두꺼비바위가 둘로 쪼개어졌는데, 그 후 운수사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결국 절이 쇠퇴하게 되었다.
둘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모라 뒷산에 있는 운수사가 옛날에는 번창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운수사의 주지는 신도가 많은 것을 귀찮아하고 불평했다고 한다. 하루는 초립동이 운수사에 들러 주지를 찾아뵙고 며칠간 절에 머물고 싶다고 했더니 주지가 또 귀찮아하면서 불평을 했다. 화가 난 초립동이 “절에 신도가 많이 오면 고맙게 생각하고 중생 제도에 앞장서서 힘을 써야 할 스님이 신도가 오는 것을 귀찮아해서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주지는 “제발 신도들이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초립동은 주지에게 신도가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며,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두꺼비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데 그 두꺼비바위의 턱을 쳐버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주지는 행자승을 보내어 두꺼비바위의 턱을 떼어 내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운수사에 신도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주지는 처음에는 좋아했으나 계속 신도가 한 명도 오지 않자 초립동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립동의 행방은 묘연하고 절은 점점 쇠퇴해져 갔다. 당황한 스님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두꺼비바위가 바라보는 쪽은 김해군 상동면에 있는 모 암자[당시에는 초라한 암자였다고 함]인데, 두꺼비가 거기에서 모이를 주워 먹은 후 변을 운수사에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해군 상동면의 암자는 크지 못하고 운수사만 날로 번창했는데, 이제 두꺼비의 턱이 없어져 두꺼비가 먹지를 못하므로 변을 볼 수가 없으므로 운수사는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모라 뒷산 운수사와 두꺼비 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파손’이다. 「모라 뒷산 운수사와 두꺼비바위」는 손님이 오지 못하게 하려고 명당의 기가 흐르는 지맥(地脈)을 끊어 사찰이 망하게 되었다는 풍수 설화 중 명당 파손담의 한 예이다. 명당 파손 모티프의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파손 방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서 전승되는 「모라 뒷산 운수사와 두꺼비바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사찰의 주지가 손님을 박대하여 결국 사찰이 쇠퇴하게 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 전승 내용이 조금 다르다. 아마도 운수사의 수호신인 두꺼비바위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뒤 운수사가 쇠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회자되면서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각색되어 전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