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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554
한자 鳴禮里土器-
영어의미역 Pottery Kiln Site in Myeongrye-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109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황대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토기 가마터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년 4월연표보기 - (재)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년 10월 18일~2011년 10월 17일연표보기 - (재)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109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에 있는 삼국 및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가마터

[변천]

명례리 토기 가마터의 가마는 전형적인 5세기 말의 가마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 2~3회 정도의 보수(補修)가 이루어졌다. 보수는 기존의 가마를 축소하여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소성실(燒成室)의 폭이 연소실(燃燒室)보다 넓은 형태를 보인다. 연소실과 소성실이 남아 있으며, 연도(燃道)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이 확인되었다.

가마의 절반 정도 지점에 측구(側溝)가 있으며, 가마를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측구 옆으로 구상(溝狀)으로 배수 시설의 구가 확인되었다. 6세기가 되면 토기 가마의 내부 시설은 변함이 없지만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에서 세장방형으로 변하며, 규모도 이전 시기에 비해 커진다. 명례리 토기 가마터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6세기 때의 토기 가마터가 확인되는데, 시간 흐름상 토기 가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조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명례리 토기 가마터는 부산~울산 간 고속 도로와 국도 제14호선 사이에 위치한다. 장안사 입구 삼거리에서 울산 방향으로 1㎞ 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도야 마을이 나온다. 도야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50m 떨어진 곳의 야트막한 독립 구릉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명례리 토기 가마터부산광역시청에서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일원에 산업 단지 개발을 계획하면서 대상 부지에 대해 한국문물연구원에 지표 조사를 의뢰함에 따라 처음 확인되었다. 2010년 4월 (재)울산문화재연구원이 7개 지구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삼국 시대의 고분, 조선 시대 분묘와 취락 유적을 확인하였다.

한편 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와 지형을 바탕으로 새롭게 지구를 설정하여 11개 지구에 대해 2010년 10월 18일부터 2011년 10월 17일까지 (재)울산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토기 가마터는 구릉 말단부 서쪽 사면에서 1기가 확인되었다. 토기 가마터가 확인된 구릉에서 가마 조업과 관련된 수혈, 폐기장 등이 함께 확인되었으며, 구릉 말단부 평지에서는 도로와 건물 터 등이 확인되었다.

[현황]

명례리 토기 가마터명례 일반 산업 단지 조성 부지 내에 유적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산업 단지가 조성되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토기 가마의 남아 있는 형태가 온전하지 못하며, 학술 보고서가 간행되면 주변에서 조사된 가마를 통해 복원된 모습이나 유적의 정확한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명례리 토기 가마터는 5세기 말에 조성되었고,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이며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인접한 지역에서 확인된 도로와 수혈, 건물 터, 고분군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구들과 함께 삼국 시대 명례리는 물론 기장 지역의 토기 생산과 소비, 제사와 관련된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규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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