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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참선결사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548
한자 萬日參禪結社會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연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교 단체
설립자 백용성
설립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경기도 의정부시 효원동 망월사에서 결성
이전 시기/일시 1926년 4월 - 망월사에서 내원사로 이전
최초 설립지 망월사 - 경기도 의정부시 효원동
주소 변경 이력 내원사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에서 설립된 불교 단체.

[개설]

만일참선결사회(萬日參禪結社會)는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로서 활동하였고, 1913년 범어사와 함께 선학원을 설립한 승려 백용성이 선의 부흥,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구체화시키고 한국 전통 선의 활성화를 위해 조직한 결사체이다.

[설립 목적]

일제가 ‘대처 육식’을 허용하여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 하자 승려 백용성은 이에 반대하는 건백서(建白書)를 제출한 후 한국 전통 선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일참선결사회를 결성하였다. 이 결사의 추진 배경은 일본 불교 침투와 수좌들의 나약한 수행 정신에서 나온 계율 파괴, 전통 선의 몰락을 우려해서 조직하였다.

[변천]

1913년 범어사와 함께 선학원을 설립한 승려 백용성은 결사회의 근간을 선과 율(律)의 균형적인 자립으로 정하고, 자신의 근거처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2번지 대각교당에 임시 사무소를 정하였다. 만일참선결사회는 총 9개 조의 규칙을 정하였는데 명칭, 목적, 실천 방법, 참가자 자격, 종주의 역할, 조직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1925년 6월 승려 백용성만일참선결사회를 준비하고 8월에는 『불교』 14호에 광고를 내어 결사 대중을 모집하여 5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결사회를 시작하였다. 겨울 한철을 지낸 후 망월사가 위치한 도봉산의 산림이 보안림에 편입되어 나무 연료의 사용에 제약을 받게 되자, 1926년 4월에 통도사의 말사인 내원사로 이전하였다. 그 이후 언제까지 존속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만일참선결사회는 총 9개 조로 구성된 규칙을 통해 운영되었는데, 그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제1조 본사의 명칭은 정수별전선종활구참선만일결사회(精修別傳禪宗活口參禪萬日結社會)라 하여 위치를 경기도 양주군 도봉산 망월사에 정함.

제3조 본사의 결사는 만일(萬日)로 정하되 차를 10기로 분하여 1기를 3개년으로 제정함.

제9조 차(此) 규칙 중 미미한 점은 유(有)할 시(時)에는 종주 화상이 임시로 규정하여 발표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칙을 통해 결사는 단순한 수행이 아니라 식민지 불교와 피폐된 계율 불교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결사의 정상화를 위해 계율 중심, 수행 환경 보호, 규칙 중심의 수행을 철저하게 지키려 하였다. 한편 1926년 4월에 통도사의 말사인 내원사로 이전하였는데, 이는 산림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제의 간섭 때문일 것이다. 당시 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던 대처 승려들과의 갈등도 한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만일참선결사회가 선율(禪律)을 균형적인 입규(入規)로 내세웠음은 불교 전통의 핵심이 선과 계율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동참했던 대중들이 후일 한국 불교 승단 정화 운동을 전개한 주역들이라는 점에서 당시 결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하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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