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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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義賊鄭鳳瑞 |
영어의미역 | Legend of Righteous Outlaw Jeong Bongseo in Dongnae |
이칭/별칭 | 「의적 정봉서와 마누라」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집필자 | 김현주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정봉서(鄭鳳瑞)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동래 의적 정봉서」는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다가 도적이 된 정봉서가 부잣집 재산을 뺏어다가 가난한 집을 도와주었다는 의적담이고, 정봉서 아내가 하마석으로 부순 동헌 삼대문(三大門)의 판자가 금강 공원에까지 멀리 날아갔다는 신이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3년에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에서 간행한 『동래 향토지』에 「의적 정봉서와 마누라」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와 채록자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옛날 동래부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정봉서라는 효자가 있었는데 힘이 장사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 되어 의원에게 물었더니 개 천 마리를 잡아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집이 가난했던 정봉서는 개를 천 마리나 구할 길이 없어 그저 동네 살찐 개들을 한 마리 두 마리 훔쳐 와 어머니에게 고아드렸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정봉서는 어머니가 죽고 난 뒤에도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 오다가 나중에는 결국 도적떼의 두목이 되었다.
어느 날, 동래 성안의 사람들이 기장의 쌍다리 고개에서 도적들을 만나 도적 소굴에 끌려갔다. 도적들은 그들을 두목인 정봉서 앞에 끌고 갔다. 정봉서는 그들이 동래 성안에서 사는 사람들임을 알고, 부하들을 시켜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 노자까지 챙겨서 돌려보냈다. 정봉서는 부잣집 재산을 뺏어다가 가난한 집을 도와주기도 하였는데, 하루는 정봉서가 가난한 집 앞을 지나가는데 집안에서 방금 해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집 부엌을 들여다보니 밥 지을 쌀은 물론이고 국을 끓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정봉서는 쌀과 쇠고기와 미역 등을 주인 몰래 부엌에 갖다 두었다.
사람들의 입에 의적이라는 이름으로 오르내리던 정봉서는 말년에 포고[죄인을 잡아 관가에 고발함]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동래부의 옥리들은 정봉서에게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아서 15일째 되는 날 결국 굶어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봉서의 아내는 동헌으로 찾아가 그 앞에 있던 하마석을 번쩍 들어 동헌의 삼대문을 때려 부수었다. 부서진 판자는 멀리 금강 공원 입구까지 날아갔는데, 지금 금강 공원 입구에는 그때 정봉서의 아내가 부순 대문 기둥으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동래 의적 정봉서」의 주요 모티프는 ‘의적’, ‘신이’ 등이다. ‘의적’ 모티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문학의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서양의 경우에는 ‘로빈 후드’와 관련된 이야기가 여러 지역에서 장구한 기간에 걸쳐 전승되어 왔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다양한 형태의 의적 설화와 함께 「홍길동전」, 「전우치전」, 「임꺽정」, 「장길산」 등과 같은 고전 소설이 전해지고 있다.
「동래 의적 정봉서」는 효행을 하려고 시작된 ‘도적질’이라는 부정적 행위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긍정적 행위를 접목하여 궁극적으로는 긍정적 의미를 창출해 내고 있다. 정봉서의 아내 또한 비범한 인물로 설정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동래 의적 정봉서」 전설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27-9번지에 있는 금강 공원 입구에 있는 건물을 증거물로 제시하여 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