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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동 유적 출토 동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432
한자 德泉洞遺蹟出土銅鏡
영어의미역 Copper Mirror Excavated from the Remains of Deokcheon-dong
이칭/별칭 덕천동 유적 출토 구리거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 산107-11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최정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경|구리거울
재질 청동
크기 13.2㎝[소문 방형경 길이]|10㎝[소문 방형경 직경]|10.1㎝[팔괘문대 현경 길이]|8.3㎝[팔괘문대 현경 직경]|11.2㎝[동자과화문경 직경]
소유자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자 동아대학교 박물관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덕천동 유적발굴 조사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덕천동 유적 발굴 조사
현 소장처 동아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덕천동 유적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 산107-1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덕천동 유적에서 출토된 고려 시대의 동경.

[개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2002년과 2006년에 실시한 덕천동 유적 발굴 조사에서 3점의 동경(銅鏡)이 출토되었다. 덕천동 유적부산광역시 북구 덕천2동 산107-1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본래 구포 왜성(龜浦倭城)의 지성으로 추정되던 곳이었으나, 발굴 조사 결과 왜성 관련 시설뿐만 아니라 삼한~삼국 시대의 덧널무덤[목곽묘] 2기, 고려 시대의 분묘 18기, 조선 시대의 분묘 105기 등 여러 시기에 걸친 분묘 유적이 함께 조사되었다.

동경은 고려 시대의 분묘인 널무덤[목관 묘]에서 출토되었으며, 동경뿐만 아니라 각종 청자와 도기, 동경, 육도전(六道錢) 등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유물들이 검출되어 부산의 고려 시대 연구에 아주 중요한 유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 덕천동 유적(德泉洞遺蹟) 출토 동경(出土銅鏡) 3점은 모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경은 구리를 매끈하게 다듬고 갈아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는 도구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생활 도구가 아니라 광명(光明), 즉 해의 상징물과 같은 주술적 성격을 지닌 의식용 도구의 역할이 강하였다.

[형태]

덕천동 유적 출토 동경은 3점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고려 시대 널무덤 제1호에서 출토된 동경은 무늬 없는 네모꼴의 거울[소문 방형경(素文方形鏡)]로 중앙 상단부에 꼭지가 달려 있으며, 꼭지 중앙에서 약간 비켜나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문양은 없으며 부식이 심한 상태이다. 크기는 길이가 13.2㎝, 직경이 10㎝이고, 무게는 160g이다. 고려 시대 널무덤 제6호에서 출토된 팔괘문대 현경(八卦文帶縣鏡)은 청동제 원형으로 주연부(周緣部)를 따라 팔괘문과 원문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동경 상단 윗부분에 초엽형(草葉形)의 꼭지를 부착하여 매달 수 있도록 하였으며, 경면(鏡面)은 평평하지만 문양이 있는 뒷면은 오목하다. 거울 면의 상단 부분에는 천이 붙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크기는 길이가 10.1㎝, 직경이 8.3㎝이고, 무게는 180g이다.

고려 시대 널무덤 제16호에서 출토된 동자과화문경(童子果花文鏡)은 청동제 원형 거울로 테두리의 일부가 파손되었다. 내구와 외구를 2개의 돌대 선으로 구분하였으며, 테두리에도 한 조의 태선문(太線文)[굵은금무늬로, 남해안의 빗살무늬 토기에서 보이는 굵고 깊은 줄무늬]을 장식하였다. 뒷면 중앙에는 뉴좌(紐座) 없는 꼭지를 배치하였으며, 내·외구 구분 없이 화문(花文)·포도문·동자문(童子文)을 각각 장식하였다. 직경은 11.2㎝이고, 무게는 105g이다.

[특징]

덕천동 유적 출토 동경은 모두 청동으로 제작된 거울로, 각각 소문 방형경과 팔괘문대 현경, 동자과화문경이다. 소문 방형경은 부식이 심한 상태이나 나머지 2점은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동경은 고려 시대에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던 거울로, 고려 시대의 사상 및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그러나 고려 동경은 전세품(傳世品)[옛날부터 소중히 다루어 전래된 물건]이 많아 연대 추정에 어려움이 많고, 제작지 또한 고려인지 중국인지 불분명한 상태로 연구에 곤란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덕천동 유적 출토 동경은 동경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문헌 기록이 거의 없는 고려 시대 부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아주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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