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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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堂甘夜學 |
영어의미역 | Dangam Night School |
이칭/별칭 | 한빛야학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서로9번길 2[당감3동 500-1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홍 |
[정의]
1980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3동에 설립되었던 노동 야학.
[설립 목적]
1980년 3월 노동자의 현실 인식과 계급적 각성을 통하여 현장 활동가를 육성할 목적으로, 고호석이 주도하여 당감야학을 설립하였다. ‘한빛야학’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변천]
설립 당시 부산대학교의 동문 서클 회원들로 강학(講學)[야학의 교사]을 구성하였다. 당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당감동은 대규모 사업장을 낀 노동자 밀집 지역으로, 처음부터 성당 측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순조롭게 운영되었다. 내부적으로 강학들이 교재 연구나 스터디를 통하여 점차 노동 야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82년 이후 이승명·이창우 등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기 위하여 「고성 오광대」 놀이를 전수받는 등 헌신적 열정을 보였다.
당시 당감성당은 부산의 대표적 민주 인사인 송기인 신부와 이흥록 변호사[신도회 회장]가 있던 곳으로, 민주화 운동의 센터 역할을 하였다. 이에 자연스레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거나 야학에 뜻을 둔 많은 대학생들이 강학으로 들어왔으며, 또 이곳을 거쳐 다른 야학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1980년대 중반 통합 노동 야학이 조직되면서 중심 야학으로 역할을 하였으며, 현장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처음에는 국어, 영어, 수학, 상식 등 일반적인 교과목으로 출발하였다. 학제는 4기까지 1년제로 운영하다가, 5기부터 6개월로 하였다. 3기에 들어선 이후로는 근로 기준법을 강의에 포함하였다. 학예회, 연극 등 내부 행사에 외부의 노동자들을 초대하기도 하면서 참여나 호응도를 높여나가기도 하였다. 1980년대 신발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동 쟁의가 많이 일어나고 야학 졸업생들이 현장에서 노동 쟁의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들의 노동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논의가 당감야학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는 당감야학이 이러한 현장 지원 활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당감야학은 초기 노동 야학에서 출발하여, 1980년대 중반 조직된 통합 노동 야학의 중심 역할을 한 야학으로서,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 야학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