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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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機張鴛鴦臺-傳說 |
영어의미역 | Princess of the Sea God on Wonang-dae in Gijang |
이칭/별칭 | 「원앙대의 용녀」,「원앙대의 비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
집필자 | 신주영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서 원앙대(鴛鴦臺)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기장 원앙대의 전설」는 미랑 스님과 용녀, 젊은 장사와 마을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흔적 전설이다. 지금도 탯줄, 가위 모양, 짚신 자국, 나무 그릇의 흔적과 가마솥을 걸었던 바위 등이 남아 있으며, 원앙대 동굴에 파도가 치면 용녀의 절규가 들린다고 한다. 원앙대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413번지에 있는 시랑대(侍郞臺)를 지칭한다. 시랑대라는 이름은 1733년(영조 9) 5월에서 1734년 11월까지 기장 현감으로 있던 권적(權摘)이 자신의 벼슬 이름인 시랑(侍郞)을 붙여 지은 것이다. 원앙대의 북쪽은 미랑대(尾郞臺)라 하고, 원앙대의 아래에는 기우제를 올리는 대가 있었다고 하며, 그 대 아래에 십리의 동굴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채록/수집 상황]
2001년 9월 30일 기장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기장군지』 하권에 「원앙대의 용녀」, 「원앙대의 비련」 등 두 편으로 나뉘어서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와 제보 시기는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으며, 구술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각색하여 문학적인 표현을 많이 가미하고 있다.
[내용]
기장 원앙대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첫째 이야기는 미랑 스님과 용녀에 관한 전설이다. 옛날 어느 여름, 가뭄이 들어 원앙대 아래에서 미랑 스님이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지낸 후 원앙대의 풍경에 빠져 앉아 있었는데, 저녁에 동해 용왕의 딸이 아리따운 자태를 뽐내며 나타났다. 미랑 스님은 용녀의 아름다움에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그녀를 덮쳤다. 그 후 둘은 원앙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용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용녀는 용왕의 눈을 피하기 위해 원앙대에 탯줄을 끊을 가위와 상자를 놓고 해산할 준비를 하였다.
용왕은 용녀가 인간과 사통하여 아기를 낳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성난 파도를 일으켰다. 막 순산하여 탯줄도 끊지 못한 채 파도에 휩싸인 용녀를 옥황상제가 천마를 보내어 구출하여 천상의 옥녀로 삼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탯줄의 흔적과 가위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미랑 스님이 용녀를 구하러 뛰어내린 자리에 짚신 자국도 남아 있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용녀를 위해 해룡단을 세우고, 그곳을 미랑대라고 불렀다. 지금도 원앙대 동굴에 파도가 치면 용녀의 절규가 들린다고 한다.
둘째 이야기는 젊은 장사와 마을 처녀의 이야기이다. 옛날 젊은 장사는 원앙대의 용굴에 들어가 살면서 독룡이 잡아 놓은 고기를 뺏어 먹곤 했다. 장사는 잠이 들면 사흘 밤낮을 잤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사를 두려워했다. 하루는 장사가 마을의 처녀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미역을 따는 것을 보고 그 자태에 반해 처녀를 납치하여 겁탈하였다. 처녀도 장사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용굴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처녀가 임신을 해 해산할 때가 되어 장사가 처녀의 어머니를 데리러 마을로 간 사이에 용굴의 독룡이 처녀와 아이를 한 입에 삼켰다. 뒤늦게 온 장사는 독룡을 죽였지만 장사도 상처를 깊게 입어 죽게 되었다. 그 자리에 지금도 탯줄을 자르려던 가위·탯줄 그리고 나무 그릇의 흔적, 가마솥을 걸었던 바위 등이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기장 원앙대의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겁탈’, ‘난산(難産)’, ‘승천’, ‘죽음’ 등이다. 「기장 원앙대의 전설」는 첫째 이야기[「원앙대의 용녀」] 주인공인 미랑 스님과 용녀, 둘째 이야기[「원앙대의 비련」]의 주인공인 젊은 장사와 마을 처녀 등의 성격이 변함에 따라 이야기의 전체적인 성격도 달라져 있다.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남성이 여성을 겁탈하게 되고, 결국 둘이 사랑에 빠져 원앙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전반부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후반부가 사뭇 다르다. 첫째 이야기에서는 옥황상제에 의해 용녀가 구출되고 아이와 미랑의 생사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것에 비하여, 둘째 이야기에서는 마을 처녀와 아이가 독룡에게 잡아먹히고 젊은 장사마저 독룡과 싸우다가 죽게 된다.
첫째 이야기는 용녀와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신화적 성격이 남아 있으므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지 않고 옥황상제가 구출한다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지만, 둘째 이야기는 주인공이 장사와 처녀라는 보다 일상적인 인물로 대체되고 그 결말도 비극적인 전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첫째 이야기는 전설이지만 아직 신화적 성격을 벗어 버리지 못했고, 둘째 이야기는 신화가 전설화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둘째 이야기가 첫째 이야기보다 많은 증거물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증거물을 통해 진실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전설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