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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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甲火良谷縣 |
영어의미역 | Gaphwaryanggok-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장안읍|일광면|철마면|정관읍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정희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원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갑화량곡(甲火良谷)이란 이름은 동래의 지명 변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동래군은 757년(경덕왕 16) 이전에는 거칠산군(居柒山郡)이었는데, 거칠산군은 ‘거칠다’의 우리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거친 뫼’ 즉 황령산을 끼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갑화량곡도 우리말을 한자음화한 이두식 지명으로 볼 수 있다. ‘갑(甲)’이라는 글자는 함경도의 갑산(甲山)과 경기도의 갑비고차(甲比古次)[강화]처럼 지명에 사용되고 있고, 갑절(甲折)[두 배] 등의 용례에서 보듯이 현재의 한자음과 일치하는 글자이다.
다음 화(火)는 즉 ‘화=불=벌’은 동일한 내용의 다른 한자식 표현이다. 양(良)은 약음차(略音借) ‘ㄹ’로도 통용되므로 화(火)와 양(良) 두 글자의 합음은 훈독하는 경우 ‘불’로 읽히게 된다. 곡(谷)은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 정비 과정에서 소향(小鄕)으로 전화하였다고 본다.
이처럼 이두식 해석으로 보면 갑화량곡은 갑국(甲國) 혹은 갑향(甲鄕)이라는 의미가 된다. 갑향의 갑은 음독하여 ‘갓[邊]’과 통하는 것으로 보아 갓 마을[변성(邊城)=변두리 마을]이라고도 한다. 또 ‘갑’의 자전적 의미는 등급의 첫째를 의미하므로, 갑향은 ‘첫째 마을’로도 해석된다. 아마도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귀환할 때 처음으로 닿는 정감 어린 표현이 지명으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이 형성되기 전 삼한 시대 기장 지역은 별도의 소국이 존재하지 않았고, 읍락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기장 지역의 읍락은 인근에 있는 소국, 즉 동래의 전신인 독로국의 정치적 영향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세기 전후로 신라의 세력이 성장하여 독로국을 정복하는데, 이때 기장 지역도 함께 정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정복한 소국을 초기 단계부터 지방관을 파견하여 통치하지는 못하였다.
신라는 506년(지증왕 6) 지방 제도를 정비하지만, 이때의 지방 통치 체제는 ‘주군제(州郡制)’이어서 현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당시 신라가 주군제로 편입하지 못한 곳은 성(城), 촌(村)으로 편제하였던 만큼 처음에는 갑화량곡성 혹은 갑화량곡촌으로 명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삼국 통일 전쟁이 끝난 후 국왕 중심의 지방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전의 촌은 현으로 편제되었다. 그 시기는 당과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는 675년(문무왕 15), 676년(문무왕 16)으로, 이때 현령의 활약상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기장 지역이 갑화량곡현으로 형성된 때는 7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덕왕이 중국식 전제주의 확립을 위해 지방 군현의 명칭을 모두 한자식으로 고쳤던 757년(경덕왕 16)에 갑화량곡현은 기장현이라는 한자식으로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속현으로 강등되어 동래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고려 건국 이후 동래군이 속현으로 강등되자 기장현은 1391년(공양왕 3) 주현이 될 때까지, 1018년(현종 9)에는 울산군, 1304년(충렬왕 30)에는 양산군에 소속되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잡지(雜志)3 동래군조에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이다.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 지금까지 그대로 부른다. 영현이 둘이다. 동평현은 원래 대증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지금까지 그대로 부르고 있다. 또 기장현은 본래 갑화량곡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쳐 그대로 부르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갑화량곡현의 직접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명칭의 유래를 추정하는 데 다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울산군 건치 연혁조의 내용이 참고가 된다. “신라의 지명에는 화(火)를 칭하는 것이 많은데, 화는 불(弗), 불은 벌(伐)에서 진화한 것이다”
[변천]
갑화량곡현은 삼한 시대 소국을 성립시킬 정도의 기반은 되지 못하여, 소국을 형성하는 읍락으로 존재하였다. 고고학적 발굴로 위치를 비정하면, 청동기 시대 유물이 나온 지역은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일광면 칠암리가 있다. 또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 철마면 고촌리,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 장안읍 명례리 등에서 수십 기 내지 100여 기의 분묘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 유적에서 삼한·삼국 시대 유물과 유구(遺構)가 출토된 만큼 갑화량곡현에 비정된다. 즉 이들 읍락 가운데 갑화량곡현의 읍락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서 신라에 편제된 이후 거점 촌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화량곡현의 행정 구역은 현재의 기장군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철마면, 정관읍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