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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460
한자 玉井寺-
영어의미역 Site of Okjeongsa Temple
이칭/별칭 옥정사지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달음길 101[원리 산95]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절터
소유자 옥정사
관리자 옥정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3년 10월 10일 - 박선해 선사가 옛 옥정사 터에 옥정사를 재건함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산95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있는 삼국 시대 때 건립된 옥정사의 절터.

[개설]

옥정사는 삼국 시대에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취정사(鷲井寺)에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옥녀봉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을 보고 창건하였다고 하며, 이후 달음산 기슭에 취정사와 옥정사가 양대 거찰로서 양립하고 있었다.

[변천]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에는 선여사, 취정사, 안적사, 장안사라는 4대 사찰이 기록되어 있는데, 옥정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차성가(車城歌)」에 “옥정사 깊은 골의 춘경(春景)을 구경하고”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옥정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신라 시대 취봉산[달음산] 서쪽에 있는 취정사에 머물고 있던 원효 대사는 왕도[경주]로 가려고 옥녀봉을 넘어 동쪽 산기슭에 이르러 동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서광을 바라보다가 문득 갈증을 느꼈다. 그때 마침 옥녀(玉女) 같은 처녀가 옹달샘에서 샘물을 물동이에 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사께서 물을 청하자 처녀는 표주박 가득히 샘물을 떠올렸다. 그 샘물을 마시자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무거운 몸이 홍모처럼 가벼워졌다. 대사는 세 번이나 받아 마시고는 처녀에게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으며 고마운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그 처녀는 몸이 굳어지면서 돌로 변하여 관세음보살상이 되었다. 대사는 그 처녀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음을 알고 오체투지의 예를 올렸다. 그런 뒤 대사는 이곳이 관음 도량임을 알고 초막을 짓고 잠시 머물면서 동해 용왕에게 이 옥샘을 지켜 주기를 당부하고 왕도로 떠났다. 그 후 이곳은 동해 용왕이 지켜 주는 옥샘이 있고 관세음보살의 석상이 있는 터라 마을 사람들이 암자를 짓고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면서 숭유 억불 정책 때문에 취정사도 퇴락하고 옥천사도 퇴락하였는데, 큰 절에 있던 돌부처를 이곳에 모시면서 다시 암자를 짓고 옥정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달음산은 물이 없는 산이지만 기묘하게도 취봉산에 취정(鷲井)이 있고 옥녀봉에 옥정(玉井)이 있으며 이 두 곳에 모두 사찰이 입지하고 있다.

현재의 옥정사는 1923년 10월 10일 박선해 선사가 옛 옥정사 터전을 찾아서 새로 창건한 것이다. 1954년경 박한봉 스님이 많은 불사를 하였는데, 불사 중에 관음보살이 이곳에서 세 번이나 현몽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1969년 12월 대웅전 중건, 1970년 산신각 중수, 1983년 6월 종각, 범종, 북, 운판, 목어 불사, 1986년 1월 요사 중건, 1986년 7월 칠성각 중수, 1986년 7월 용왕전(龍王殿)을 신축하였다.

[위치]

옥정사 터기장군 일광면 달음산 옥녀봉의 옥정 계곡에 위치한다.

[현황]

현재 옥정사 터옥정사를 새로이 창건하였다. 대웅전은 단층 기단 위에 세운 이익공식(二翼工式)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이중 기단의 삼층 석탑을 배치하였는데, 1층 탑신 면석에는 각 면 1상씩 사방불(四方佛)을 배치하였다. 동향한 대웅전 아래쪽으로 오른쪽에 설법 보전이 있고, 왼쪽에 소림각이 있으며 대웅전을 마주하여 종루(鐘樓)가 있다.

대웅전 왼쪽에는 약왕각(藥王閣)이 있는데 약수를 마실 수 있게 수조를 배치하였다. 대웅전 뒤쪽에 산령각(山靈閣)이 있고 그 한 단 위에 칠성각(七星閣)이 배치되었다. 산령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식(翼工式) 맞배지붕 건물이며, 칠성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식 건물이다. 특히 칠성각은 방풍판이 건물 벽면의 ⅔를 덮을 정도로 넓어 조선 시대 후기에 유행한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옥정사 터는 신라 통일기 무렵 기장군 지역으로 불교가 유입되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절터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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