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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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公死節記 |
영어의미역 | Achievements of Lord 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 다대포 첨사였던 윤흥신(尹興信)의 순절에 대한 글을 모아 엮은 책.
[저자]
강필리(姜必履)는 1764년에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마침 앞서 조엄(趙曮)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하여 고구마를 심고 가꾸는 법을 연구, 지도하여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를 토대로 그는 『감저보(甘藷譜)』를 남겼다. 또한 동래 부사를 맡은 직후 바로 『윤공 사절기(尹公死節記)』를 지었다.
[편찬/간행 경위]
1767년(영조 43)에 다대포 첨사 이해문(李海文)이 윤흥신을 위하여 자신이 지은 시와 동래 부사를 맡은 부제학 조엄이 지은 「윤공 전망 사적서(尹公戰亡事蹟敍)」를 강필리에게 가져와 윤흥신을 위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당시 동래 부사로 있던 강필리가 『윤공 사절기』를 편찬하게 되었다. 간행자는 오한원(吳翰源)이다.
[구성/내용]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사람은 반드시 표창되어야 하며, 윤흥신은 그 전공이 뚜렷하므로 충렬의 반열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동래 부사로 와서 충렬사를 참배하니 송상현(宋象賢), 정발(鄭撥) 등은 배향되어 있으나 윤흥신은 누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범어사에서 전망인의 책자를 우연히 열람하면서 송상현, 정발과 나란히 윤흥신까지 기록된 사실을 보고 ‘유림은 불자보다 못함인가?’ 하고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넷째, 몰운대(沒雲臺) 옆에 단을 세워 제사를 거행하도록 하여 그 원통함을 위로하라고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