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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천씨 석대 문중 고문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97
한자 穎陽千氏石坮門中古文書
영어의미역 Old Documents for Yeongyang Cheon clan in Seokdae-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손숙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영양 천씨
용도 일상 생활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7년 - 발굴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기증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로 210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동래부 석대동 하리에 거주하던 영양 천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

[제작 발급 경위]

‘영양 천씨 석대 문중 고문서(穎陽千氏石坮門中古文書)’는 조선 후기 개인들이 일상적인 사회 경제 생활에 필요한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형태]

필사본이며, 규격은 각 고문서의 양식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구성/내용]

조선 시대 동래 석대동 상리와 하리에 영양 천씨 가문이 세거하였다. 영양 천씨 가문의 중시조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조선에 온 천만리(千萬里)이다. 이 가문이 석대리에 입향한 것은 천만리의 4세손인 천찬석이 석대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천찬석의 손자 대에 각각 석대동상리와 하리에 자리 잡았다. 영양 천씨 석대 문중 고문서는 하리에 거주한 영양 천씨 가문에서 전해 오는 것이다. 영양 천씨 하리 가계에서 보관해 오던 고문서는 총 163점이다. 이 가문의 전승 고문서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준호구와 호구 단자 등 호적류이다.

약 230년 동안에 걸쳐 작성된 것으로 현재까지 동래 지역에서 발굴된 호적류 가운데 가장 긴 기간에 걸쳐 있다. 또한 교지류(敎旨類), 첩(牒), 전령, 천지, 망기(望記) 등은 이 가계의 사회 지위를 잘 보여 주는 고문서들이다. 특히 조선 후기 동래 지역 무임 직책에 대한 차첩과 전령은 주목된다. 통상 호적 대장이나 준호구상에 나타나는 직역만으로 지역 사회에서 이들이 군역(軍役)을 걸머지는 부류인지 아니면 급료를 받는 무임인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이 차첩들은 무임 집단의 실제 파악이 가능한 동래 지역의 것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무임을 역임한 가계를 하나 더 추가하여 무임 집단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그 외 이 가계에서 전승되는 고문서는 분재기, 토지와 노비 매매 문기, 청원서 등이 있다.

이들 문서는 내용별로 하리 가계의 무임(武任) 진출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 주는 고문서와 경제 기반을 보여 주는 고문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는 하리의 천씨 가계가 석대에 정착한 이후 하급 무임에서 시작하여 중급 무임까지 진출하였으며, 19세기 이후에는 안락서원의 재임과 향교의 장의로 천거되는 등 사회적 지위를 확보해 가는 양상을 보여 준다. 또한 분재기와 토지와 노비 매매 문기를 통하여 천씨 가계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은 지역 사회에서 천씨 가계가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이 고문서는 영양 천씨 가계의 지역 사회에서의 존재 양상을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변경 지역인 동래 지역은 특히 근대 이후 대도시로 변화되면서 각 가문들이 분산 이거하여 이 지역 종족(宗族)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석대 하리의 영양 천씨 가문 고문서는 주변부 지역에 거주한 종족들의 양상을 보여 주는 주요한 자료이다. 즉, 지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부류들이 더 높은 사회적 위치로 나아가는 조선 왕조 사회의 사회적 역동성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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