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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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智異山華嚴寺事蹟 |
영어의미역 | Record of Hwaeomsa Temple in Jiri Mountain |
이칭/별칭 | 『해동 호남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화엄사 사적』,『대화엄사 사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영호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화엄사 역사 기록.
[저자]
해안(海眼)은 무안(務安)[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출신으로, 성이 오(吳)씨이며, 호는 중관(中觀)이다. 처영(處英)에게 득도하였다가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심인(心印)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영남 지방에서 승병장으로 참전한 이후 총섭(摠攝), 대화엄 종주(大華嚴宗主) 등을 지냈으며, 전란 이후에는 화엄사 등에 머물렀다. 저서로는 『중관대사 유고(中觀大師遺稿)』 1책, 『죽미기(竹迷記)』 1책, 『금산사 사적(金山寺事蹟)』 1책 등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지리산 화엄사 사적(智異山華嚴寺事蹟)』은 1636년(인조 14) 승려 해안이 저술하고 1696년(숙종 22) 2월 백암 도인(柏庵道人) 성총(性聰)이 발문을 지었다. 이듬해 3월 간행한 목판본을 인경하여 현재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형태/서지]
『지리산 화엄사 사적』은 목판본을 인경하여 만든 1권 1책이며, 다섯 구멍을 뚫고 실로 꿰매는 전통 방식의 선장본(線裝本)이다. 규격은 35.1×25.7㎝ 및 26.2×25.7㎝이다. 판본 형식은 사방을 두 선으로 둘러싼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본문에는 개별 행 사이에 계선(界線)이 있다.
반엽(半葉)의 행자 수는 7~11행 14~20자이다. 반으로 접히는 가운데 부분인 판심은 내향 흑어미(內向黑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두 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는 형태]이다. 판심제는 구례화엄사적(求礼華嚴寺迹)+장차[一·二]의 형태로 표기되어 있다.
[구성/내용]
표지 제목은 ‘지리산 화엄사 사적(智異山華嚴寺事蹟)’이다. 제1장의 1행은 ‘지리산 화엄사 사적 서(智異山華嚴寺事蹟叙)’이며 2행부터 서문의 내용이 이어진다. 제2장에는 권수제 ‘호남도 구례현 지리산 대화엄사 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을 이어 본문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끝부분의 발문에는 ‘시 강희 병자 중춘일 백암 도인 성총(時康熙丙子仲春日 柏庵道人性聰)’, 간기에는 ‘강희 삼십육년 정축 삼월 일 개간(康熙三十六年丁丑三月日開刊)’이라 표기되어 있다.
화엄사의 창건 설화와 중수 사실을 서술한 서론 부분에는 연기 조사(緣起祖師)의 화엄사 도래 경위와 창건, 자장(慈藏)의 중수, 의상(義湘)의 장륙전(丈六殿) 건립 유래, 도선(道詵)의 총림 대도량(叢林大道場) 개설, 고려 태조 때의 대규모 중건, 임진왜란 때의 소진, 인조 때 각성(覺性)의 중건 사실 등을 밝혀두고 있다.
또한 자장·원효(元曉)·의상(義湘)의 일대기, 당우(堂宇), 유물, 노주(露柱), 석탑, 화엄 석경(華嚴石經) 등 화엄사 소장의 문화재, 그리고 선조의 교지·어필·고종(古鐘) 등을 기록해 두었으며, 원소암(圓炤庵) 등 14개의 산내 암자에 대한 창건 연대와 규모 등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9편의 글도 소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지리산 화엄사 사적』은 화엄사의 유래와 역사 및 문화재 등을 수록한 현존 최고의 기록이다. 특히 화엄 석경 등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