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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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鶴-明學 |
영어음역 | Myeonghak |
이칭/별칭 | 명학 동지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원영 |
[정의]
조선 후기 부산 범어사의 중창 불사에 관여하였던 승려.
[활동 사항]
명학(明鶴)은 조선 시대 숙종 연간에 금정산 범어사에서 주석(駐錫)하였던 승려였다. 설화로 전해지는 내용을 보면 명학은 사판승(事判僧)으로 절 방앗간 소임을 맡아보며, 동시에 사중(寺中)의 전답 관리 책임을 도맡아서 수천 석이 넘는 사중 재산을 관리하였다. 그런데 재산을 많이 모아 돈을 주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라는 공명첩(空名帖)을 사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명학 동지(明鶴同知)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설화는 명학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많은 재산을 범어사 중창 불사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명학의 덕성과 훌륭한 업적을 후손에 남기기 위해 탄생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명학과 관련된 설화는 「번갈아 드는 생」, 「범어사의 영원 조사와 명학 동지」 등으로 전해져 오는데 제자인 영원 선사(靈源祖師)가 스승인 명학을 제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학은 1700년(숙종 26)에 승통(僧統) 자수(自修)가 동래 부사 이세재(李世載)와 다대포 첨사 이시번(李時番) 등의 시주를 얻어 범어사 보제루, 종각, 범어사 천왕문, 일주문 등을 중건할 때에 승려 문인(文印)·최선(最善) 등과 힘을 합쳐 완성하였다. 1705년(숙종 31)에는 팔상전을 창건하였다. 팔상전은 1905년에 승려 학암이 이미 1613년 세워진 나한전과 그 뒤에 세워진 독성각 세 건물을 연이어 붙여 현재의 건물로 새롭게 중건하였다. 1714년(숙종 40)에는 범어사 미륵전을 중건하면서 미륵전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다시 보수하였다.
[사상과 저술]
명학의 사상과 저술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으나 설화 내용에 따르면 명학이 다음 생에서 우운 진희 대사가 되었는데 그는 소요(逍遙) 태능 선사(太能禪師)[1562년~1649년]의 법을 이었으며 통도사 중창 불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설화 내용은 명학이 범어사 중건 사업에 참여하였던 시기와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다. 아마도 명학이 청허(淸虛) 휴정(休靜), 소요 태능 선사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받았다는 의미로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