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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03
한자 崔命相
영어음역 Chae Myeongsang
이칭/별칭 자량(子亮)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
대표관직 동래 부사
출생 시기/일시 1676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22년 -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25년 -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옴
활동 시기/일시 1734년 8월연표보기 - 동래 부사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736년 4월 22일연표보기 - 사망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량(子亮). 할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 최상익(崔商翼)[1631~1699]이고, 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 최중태(崔重泰)[1656~?]이다.

[활동 사항]

최명상(崔命相)[1676~1736]은 1705년(숙종 31) 세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연명 상소를 올렸고, 1722년(경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정원 가주서, 사간원 정언, 세자시강원 사서를 지내고 1725년(영조 1)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지평, 사헌부 집의, 사간을 역임하고 1734년(영조 10) 동래 부사에 임명되었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는 최명상이 1734년 8월 부임하여 1736년(영조 12) 4월 22일 죽었다고 되어 있다. 동래 부사 시절 동래읍성을 쌓은 내력, 성을 축조하는 데 동원된 사람 수 등을 기록한 내주 축성비(萊州築城碑)[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 131-4]를 건립하였다. 왜의 사절을 맞아 예를 올리던 초량 객사(草梁客舍)를 중수하고, 1735년(영조 11) 조정에 충렬사 별사의 철거를 건의하여, 이듬해 안락서원충렬사와 합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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