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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01
한자 任義伯
영어음역 Im Uibaek
이칭/별칭 계방(季方),금시당(今是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승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천
대표관직 동래 부사|오위 부총관
출생 시기/일시 1605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0년 - 식년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49년 - 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52년연표보기 - 동래 부사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54년연표보기 - 동래 부사 퇴임
활동 시기/일시 1667년 - 공조 참판 겸 오위 부총관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67년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40년 - 선정비 건립
부임|활동지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지도보기
묘소|단소 임의백 묘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만수리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계방(季方), 호는 금시당(今是堂). 할아버지는 종부시 정(宗簿寺正)을 지낸 임영로(任榮老)이고, 아버지는 좌승지 임연(任兗)이며, 어머니는 초계 정씨(草溪鄭氏)로 영의정에 추증된 정유성(鄭惟誠)의 딸이다. 부인은 상산 김씨(商山金氏)로 관찰사 김상(金尙)의 딸이다. 자녀는 임좌(任座), 임방(任埅), 임승(任陞), 임동(任董) 등 네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활동 사항]

임의백(任義伯)[1605~1667]은 1630년(인조 8) 경오 식년시(庚午式年試)에서 진사 3등(三等) 12위로 급제하여 음직(蔭職)으로 제용감 참봉(濟用監參奉)이 되었고, 통천 군수를 거쳐 충주의 수운판관(水運判官)을 지냈다. 1649년(인조 27) 기축 별시(己丑別試) 문과에서 병과(丙科) 2위로 급제한 뒤 성균관 직강이 되었다. 이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집의 등의 언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김자점(金自點)과 수원 부사 변사기(邊士紀) 등을 귀양 보낼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1652년(효종 3)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임의백은 동래 부사 재임 시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해선(海船)의 실태를 파악하여 해안 방비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금정산(金井山)에 견고한 성을 쌓아 동래부의 소재지를 옮길 것과, 기장(機張)과 양산(梁山)을 동래에 합쳐 큰 진으로 만들기를 청하였다. 1653년에는 장계를 올려 왜관에서의 교역은 선례에 따라 대청 개시(大廳開市)에서만 하고, 각방(各房)에 사사로이 들어가는 것을 금하는 약조를 정하기도 하였다.

1653년(효종 4) 초량 왜관에 연향 대청(宴享大廳)을 지었다. 쓰시마[對馬]에서 사신이 오면 조선 임금의 전패(殿牌)를 모신 초량 객사에서 예를 올리고, 예물을 증정한 후 연향 대청으로 옮겨 서계를 교환한 다음 동래 부사가 여는 환영 잔치에 참석하였다. 연향 대청은 1686년(숙종 12) 동래 부사 이항(李恒)과 1709년(숙종 35) 권이진(權以鎭)이 중창하였다. 연향 대청은 1876년(고종 13) 초량 왜관이 일본인 전관 거류지로 바뀌면서 철거되고 그 자리에 제1소학교[현 광일초등학교]가 세워졌다. 부산의 대청동이나 대청 사거리 등은 연향 대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654년 동래 부사를 퇴임하고 이듬해 승정원 승지, 황해 감사를 거쳐 1657년(효종 8) 경상 감사로 부임한 이후 형조 참의, 수원 부사, 평안 감사, 한성부 좌윤을 역임하고 1662년(현종 3) 도승지에 올랐다. 1663년 진주 부사일 때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형조 참판, 충청 감사를 거쳐 1667년(현종 8) 공조 참판 겸 오위 부총관으로 재임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인 수몽(守夢) 정엽(鄭曄)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제자가 되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 등과 함께 수학했다.

[묘소]

덕산(德山) 가야동(伽倻洞)에 장사를 지냈다가 뒤에 풍수가의 말에 따라 보은(報恩) 속리산 남쪽 만세동(萬世洞)[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만수리]으로 이장하고, 부인 김씨를 합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충주 수운판관일 때 선정을 베풀어 충주 백성들이 1640년(인조 18)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에 임의백 영세불망비(任義伯永世不忘碑)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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