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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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沆 |
영어음역 | Yi Hang |
이칭/별칭 | 태초(太初),백봉(白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신명호 |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태초(太初), 호는 백봉(白峯). 증조 할아버지는 이상신(李尙信)이고, 할아버지는 이지유(李志裕)이며, 아버지는 이방진(李邦鎭)이다. 어머니는 허경(許儆)의 딸이고, 부인은 이운한(李雲漢)의 딸이다.
이항(李沆)은 1670년(현종 11) 별시 문과 병과에 5등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이항은 1686년(숙종 12) 1월 24일 비변사의 추천을 받았는데, 추천 인물은 이항을 포함하여 한구(韓構), 이기만 등 3명이었다. 이 가운데 이항이 동래 부사에 임명되었다. 이항은 1월 19일 사은숙배하고, 3월 17일 하직 인사를 하였다. 4월에 동래 부사로 부임하여 1688년(숙종 14) 교체될 때까지 약 2년간 재임하였다.
동래 부사로 부임한 해에 초량 왜관의 연향 대청(宴饗大廳)을 중창하였다. 연향 대청은 동래 부사가 일본에서 온 사신들에게 잔치를 베풀던 대청이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의하면 연향 대청은 18칸으로, 헐소(歇所)[휴게소] 4칸, 헐청(歇廳) 2칸, 남문 3칸, 북문 1칸, 공수(公須)[공용] 17칸의 부속 건물이 있었다. 동래에 휼민청(恤民廳)을 설치하여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였고, 환곡 400여 석을 탕감해 주었으며 조세를 균등히 하는 등 백성이 입은 은덕이 말로 다할 수 없었다고 한다. 1688년 1월에 차왜(差倭)를 재판하여 구류시킨 일로 파직되었다가 재등용되어 벼슬이 사헌부 대사헌에 이르렀다. 훗날 동래의 향로 회의(鄕老會議)에서 이항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단(生祠壇)을 조성하고, 품관(品官) 문유기(文有記)를 보내 초상화를 그려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