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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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縝 |
영어음역 | An Jin |
이칭/별칭 | 율보(栗甫),학촌(鶴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수안동 421-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순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율보(栗甫), 호는 학촌(鶴村). 아버지는 사복시 첨정 안정섭(安廷燮)이다.
[활동 사항]
안진(安縝)[1617~1685]은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급제하고, 1652년(효종 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현종 초에 사간원 정언, 영광 군수, 사헌부 장령, 사간원 헌납 등을 지냈다. 1664년(현종 5) 5월 동래 부사에 임명되어 윤6월에 부임하여 조정의 지시에 따라 밀무역을 단속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1663년(현종 4) 문위행(問慰行)[조선에서 쓰시마 도주에게 보내는 외교 사절] 때 왜인과 밀약을 하여 유황(硫黃)과 병기(兵器)를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무역을 하도록 하였다.
한편 두모포 왜관에 거주하는 왜인들이 왜관 밖 출입을 금하는 규정을 어기고 채소와 생선을 구매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왜관을 나올 뿐만 아니라, 왜관 밖 4㎞[10리] 거리에 있는 선암사(仙岩寺)까지 왕래를 하였다. 이에 안진은 왜인들이 멀리 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조시(朝市)를 왜관 문밖에 설치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1666년(현종 7) 9월 병으로 동래 부사직을 그만두었다. 1669년(현종 10) 전주 부윤, 1670년 동부승지, 형조 참의, 승지, 병조 참의, 호조 참의 등을 역임하고, 1674년(숙종 즉위년)과 1677년(숙종 3) 두 차례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0년(숙종 6) 황해도 관찰사 이후 대사간, 예조 참판, 개성 유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