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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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時代-陶磁器 |
영어의미역 | Pottery of the Joseon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동철 |
[정의]
부산 지역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의 도자기.
[개설]
부산 지역의 조선 시대 유적인 절터[寺址], 성터[城址], 무덤, 생활 유적지, 가마터[窯址] 등에서 확인된 도자기는 15~16세기의 분청사기(粉靑沙器)와 17세기의 백자가 대부분이다. 그릇의 종류는 발(鉢), 대접(大楪), 접시(楪匙), 잔(盞), 호(壺), 합(盒), 병(甁), 유병(油甁)[몸통이 탄력 있는 모습의 작은 병], 고족배(高足杯)[접시 형태의 윗부분과 높은 다리[대각(臺脚)] 형태의 아랫부분을 붙인 잔], 명기(明器)[부장품으로 크기가 작은 그릇], 제기(祭器)[제례에서 사용되는 그릇 및 관련 도구들] 등이다.
[출토지]
1. 성터
기장읍성(機張邑成)[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에서 17세기 철화 안료[문양을 그리고 난 후 구워 내면 문양이 갈색이나 흑갈색을 띰]로 문양을 넣은 철화 백자 호(鐵畵白磁壺)가 출토되었다.
2. 무덤
북구 덕천동에서 17세기의 백자 발(鉢)과 접시 등이 출토되었으며, 기장군 기장읍 교리에서 17세기의 백자 발과 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에서는 15세기의 인화 기법(印花技法)[도장을 사용하여 문양을 장식하는 기법] 분청사기 병과 접시, 16세기의 귀얄 분청사기 접시, 17세기의 백자 합과 명기 등이 출토되었다.
3. 생활 유적지
동래구 수안동에서 15세기의 인화 분청사기 대접이 출토되었으며, 금정구 두구동에서는 15세기의 인화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4. 가마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에서 15세기 인화 분청사기의 발·대접·접시·병, 귀얄 분청사기의 대접·접시·뚜껑, 백자 제기·고족배 등이 출토되었다. 기장군 장안읍 용소리에서는 17세기 백자의 잔과 접시 등이 출토되었고, 정관읍 두명리에서는 17세기 백자의 잔·발·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5. 명문 자기 출토 유적지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동평현성 터[東平縣城址]에서 분청사기 인화‘인수’명대접편(粉靑沙器印花‘仁壽’銘大楪片)과 분청사기인화‘동◯인수’명접시편(粉靑沙器印花‘東◯仁壽’銘楪匙片)이 출토되었다.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있는 두모포진성 터[豆毛浦鎭城址]에서는 분청사기인화‘장’명접시편(粉靑沙器印花‘長’銘楪匙片)이 출토되었다. 동래구 수안동의 수안동 유적(壽安洞遺蹟)에서는 분청사기인화‘동래 인수부’명대접편(粉靑沙器印花‘東萊仁壽府’銘大楪片)과 분청사기인화‘경◯장흥’명대접편(粉靑沙器印花‘慶◯長興’銘大楪片)이 출토되었다.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에 위치한 기장군 장안리 유물 산포지(機張郡長安里遺物散布地)에서는 분청사기인화‘울산 장흥고’명접시편(粉靑沙器印花‘蔚山長興庫’銘楪匙片)이 출토되었다.
[특징]
조선 시대 부산 지역의 도자기는 17세기의 유적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시기별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15세기에는 인화 분청사기가 주류이고 16세기에는 귀얄 분청사기가 대부분이었다. 17세기에는 백자가 일반적인데, 철화 백자도 보이고 있다. 그릇의 종류는 대접·접시 등이 대부분이고, 병이나 잔·사발 등도 보이고 있으며, 제사와 관련된 명기(明器) 등도 출토되었다.
특히 조선 초기 인화 분청사기에 명문을 넣은 것은 주목된다. 이는 1417년(태종 17)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릇에 궁궐 내에 있는 각 관청의 이름을 넣어 바치도록 하였다고 한다. 관청명 분청사기의 예는 장흥고(長興庫), 인수부(仁壽府),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내자시(內資寺) 등이 있다. 장흥고와 인수부는 경상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제작한 예가 많으며, 지역명이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이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된 특징이다. 내섬시는 전라도 지역, 예빈시와 내자시는 충청도 지역에서 제작되었고, 지역명은 없다. 따라서 경상도 지역에서 생산된 관청명 분청사기는 생산지와 공납(貢納)[현물을 국가에 바침]한 관청을 알 수 있어, 조선 시대 분청사기의 생산과 소비 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