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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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桑原一郞 |
영어음역 | Guwabara Ichiro |
이칭/별칭 | 상원일랑(桑原一郞)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1928~1929년 부산 부윤을 지낸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구와바라 이치로[桑原一郞]는 1883년 4월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 吉敷郡 宮野村]에서 태어났다. 1908년 동경제국대학 법과 대학 법률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11월 고등 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1911년 8월 사가 현[佐賀縣]의 시보(試補)로 임명된 이후 1923년까지 나가노 현[長野縣]과 야마구치 현[山口縣]의 이사관, 시마네 현[島根縣]·오이타 현[大分縣]·오키나와 현[沖繩縣]의 경찰부장을 지냈다.
1923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수산과장에 임명되어 조선으로 왔다. 이후 1924년 함경북도 내무부장, 1926년 함경남도 내무부장을 거쳐 1928년 3월 부산 부윤에 임명되었다. 부산 부윤 시절 가장 힘을 기울였던 사업은 전차 부영(電車府營)이었다. 부산부에서 직접 전차를 운영하기 위해 전차 운영 회사인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에 시설 인수 의사를 밝히자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는 전차 부문 외에 전기·가스 설비까지 부산부에 넘기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전차 운영 문제는 전기 사업으로까지 확대되어 버렸다.
1920년대 초반에 전기 부영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으나 부윤의 잦은 교체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다 1927년 6월 부산부 협의회가 전기 부문을 사들여 부산부가 운영하기로 한 ‘중대 자문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구와바라 이치로는 이런 상황에서 부임하였기 때문에 재임 기간 내내 전기 부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허가 기관인 경상남도와 조선총독부 관계자를 수시로 만나고,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와 꾸준히 협상을 하여 임시 구매 계약까지 체결하고, 조인식도 치렀다. 이로써 전기 부영 사업이 매듭지어지는 듯했으나 조선사와전기가 갑자기 가격을 올려 관계자들 사이에서 찬반 의견이 갈렸고, 결국 계약이 깨졌다.
이후 다시 재협상에 들어갔으나 1929년 11월 구와바라 이치로가 대구 부윤에 임명되어 부산을 떠나고, 전기 부영이 지역 유지 간의 파벌 싸움으로 번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구와바라 이치로는 부산 부윤 재임 시절 전기 부영 외에 부산부 신청사 건립을 본격적으로 논의했으며, 부영 버스 도입에도 관여하였다. 1931년 대구 부윤을 마지막으로 관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상훈과 추모]
1923년 종5위에 서훈되고, 1930년 정5위 훈4등으로 퇴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