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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마쓰 우사부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55
한자 若松兎三郞
영어음역 Wakamasseu Usaburo
이칭/별칭 약송토삼랑(若松兎三郞)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대표관직 부산부 윤
출생 시기/일시 1869년 1월 17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96년 3월 - 일본 영사관 보에 임명, 조선에 옴
활동 시기/일시 1901년 - 다시 조선에 와 경성에서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부산부 윤에 임명, 종5위 훈5등에 서훈
활동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부산부 윤 퇴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정4위 훈4등에 서훈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조선상업은행 감사에 취임
출생지 오이타 현 - 일본 오이타 현 구주군 삼정 대자림 370[日本 大分縣玖珠郡森町大字森370]
거주|이주지 부산부 관사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지도보기
수학지 도시샤학교 - 일본 교토
부임|활동지 부산부청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지도보기

[정의]

1910~1919년 부산 부윤을 지낸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와카마쓰 우사부로[若松兎三郞][1869~?]는 1869년(고종 6) 1월 17일 일본 오이타 현[大分縣 玖珠郡 森町 大字森 370]에서 태어났다. 1891년(고종 28) 9월 교토 도시샤학교[同志社學校] 보통과, 경제과, 영문과를 졸업하고, 2년간 학교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1893년(고종 30) 동경제국대학 법과 대학 정치과 선과(選科)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896년(고종 33) 2월 외교관 및 영사관 시험에 합격하여 1910년 국권 피탈 전까지 조선, 중국, 미국 등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였다.

1896년 3월 일본영사관 보(補)로 조선으로 발령이 나 경성에서 근무하였다. 이듬해 일시 귀국했다가 미국 뉴욕으로 옮겼으며, 1899년(고종 36) 10월 승진하여 중국 항주 영사(杭州領事)에 전보되었다. 1901년 다시 조선으로 와 경성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목포이사청(木浦理事廳), 원산이사청(遠山理事廳), 평양이사청(平壤理事廳)의 이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 이후 조선총독부 부산 부윤으로 영전되어, 1919년까지 부산에서 근무하였다. 부산 부윤 시절 와카마쓰 우사부로는 일본의 입장에서 식민지 조선의 관문이자 대륙 진출의 시작점인 부산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중에서도 항만 개발에 집중하여 1902부터 1909년까지 실시된 북항 매축 공사를 토대로 한 부산항 개발 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또한 1909년 시작된 영선산 착평 공사를 1912년에 마무리하여 1911년 완공된 압록강 철교와 함께 일본에서 출발하여 조선을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해륙 연결 교통망을 완성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부산항의 물자 및 인력 수송 능력을 높이기 위해 부산진 매축과 함께 제1 부두와 제2 부두를 완성하였다. 그 가운데 제2 부두와 부산진 매축지 일부는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을 위한 전초 기지로 활용되었다. 더불어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의 설립을 지원하여 부산의 전기, 가스, 전차 보급을 늘리는 등 부산의 일본인 사회를 위한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부산 부윤에서 퇴임한 이후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人小) 설립에 관여하는 한편, 사장에 취임하여 1926년까지 재직하였다. 동시에 1923년 경성의 주식회사 조선상업은행과 조선미술품제작소의 대주주로 참여하였고, 1926년에는 조선상업은행 감사를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10년 종5위 훈5등에 서훈되고, 1922년 정4위 훈4등에 서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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