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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 오사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50
한자 富山修
영어음역 Doyama Osamu
이칭/별칭 부산수(富山修)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7가 2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대표관직 부산부 윤
출생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조선 총독부 체신부에 발령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함경북도 산업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경무국 보안과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전매국 경리과장, 서무과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함경북도 산업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조선 총독부 보안과, 외사부 겸 청도 출장소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3년 3월 - 전라북도 내무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4년연표보기 - 부산부 윤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퇴임
출생지 나가사키 - 일본 나가사키 현
거주|이주지 부산부 관사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 11지도보기
수학지 동경제국대학 - 일본 도쿄
부임|활동지 부산부청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7가 20지도보기

[정의]

1944~1945년 부산 부윤을 지낸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도야마 오사무[富山修][1903~?]는 1903년 4월 1일 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縣]에서 부산불이신(富山不二臣)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총독부 체신국을 거쳐 식산국 상공과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1932년 조선총독부 도 이사관이 되어 함경북도 산업부장 및 지방과장을 지내고, 1934년 다시 조선총독부 사무관이 되어 경무국 보안과장으로 근무하였다. 1937년 전매국 경리과장과 서무과장, 1938년 도이사관으로서 함경북도 산업부장에 임명되었다. 이때 함경북도 어업조합연합회와 함경북도 약유비 제조업수산조합(咸鏡北道鰯油肥製造業水産組合)의 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41년 조선총독부 외무 사무관으로 보안과 및 외사부에서 근무하면서 청도출장소장을 겸하였다. 이어서 사정국 외무과 부(附) 등을 역임하고, 1943년 3월 다시 도 사무관이 되어 전라북도 내무부장으로 근무하였다.

도야마 오사무는 일제의 패망이 다가오던 1944년 부산 부윤으로 옮겨 광복이 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당시는 식민지에 대한 인적, 물적 수탈이 극에 달하였던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여서 도야마 오사무도 본국의 정책에 따라 조선인의 징병과 징용에 총력을 기울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일본인의 안전과 무사 귀환에 앞장섰다. 이를 위해 경상남도 지사와 협력하여 일본인들이 안전하게 본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일제 시대의 행정 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았다.

[상훈과 추모]

최초 관작 등급은 종7위였고, 이후 종5위에 서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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