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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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下眞一 |
영어음역 | Yamasita Makaseu |
이칭/별칭 | 산하진일(山下眞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7가 2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1941~1942년 부산 부윤을 지낸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야마시타 마카스[山下眞一][1895~?]는 1895년(고종 32) 4월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縣 萩市 山田區 715]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야마시타 노보루[山下登]이고, 부인은 야마시타 우메[山下ウメ]이다. 1914년 3월 야마구치 현립 하기중학교[山口縣立萩中學校]를 졸업한 뒤 조선으로 건너와 이듬해 4월 조선총독부 관방에서 부산세관의 고원(雇員)[임시 직원]으로 취업하였다가 7월 경상북도 고원으로 옮겨 제1부 지방계(地方係)에서 근무하였다.
1916년 11월 조선총독부 판임관 견습(判任官見習)으로 경상북도 상주군 서기를 지내고, 1919년 3월 경상북도 서기가 되었다. 1922년 7월 조선총독부 재무국 속(屬)으로 옮긴 후 독학으로 1924년 고등 시험 행정관에 합격하여 이듬해 9월부터 조선총독부 경찰관강습소 교수를 겸하였다.
1926년 6월 도이사관(道理事官)으로 승진하여 경상남도에서 근무하며 재무부 세무과장, 내무부 학부과장[시학관], 산업과장, 지방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농무과장과 협력하여 농가에 원예 사업을 장려하고, 채소의 상품화를 위해 속성 재배법을 보급하는 등 농촌 경제에 족적을 남겼다. 수산업에도 눈을 돌려 당시 ‘수산 왕국’이라고 불리던 경상남도의 수산업 통제를 도모하고, 중국 위주의 수출에 새로운 토대를 만드는 한편 수출을 장려하고 판로를 넓히는 데 힘썼다.
1929년 11월 조선총독부 전매국 사무관이 되어 전주전매지국장을 지낸 뒤 평양전매지국장으로 옮겼고, 1932년부터는 전매국 제조과장, 사업과장으로 근무하였다. 전매국 근무 시절 담배 ‘은하(銀河)’를 출시하고 염전 확장을 위한 제2기 공사를 완료하는 등 전매 산업 분야에도 족적을 남겼다. 1934년 훈6등에 서보장(瑞寶章)을 받고, 그해 5월 도 사무관이 되어 강원도 경찰부장, 함경남도 경찰부장 등을 지냈다. 1937년 조선총독부 사무관이 되어 1939년까지 농림국 임정과장으로 근무하였다.
1941년 부산 부윤에 임명되어 이듬해 퇴임하였다. 부산 부윤 시절 야마시타 마카스는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에 부응하여, 전쟁 및 군수 물자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부산항 3 부두 축조 등에 힘을 쏟았다. 이후 대구세무감독국장을 거쳐 1943년 1월 공직에서 은퇴하였다. 곧이어 조선농지개발영단(朝鮮農地開發營團) 이사 겸 총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야마시타 마카스는 메이지 유신사[明治維新史]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27년 종7위에 서훈된 이후 1934년 훈6등에 서훈되고 서보장(瑞寶章)을 받았다. 1943년 퇴관 때 정5위 훈4등에 서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