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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26
한자 泝湖亭
영어의미역 Sohojeong
이칭/별칭 소호대,소호재,향모사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누정
양식 우진각 지붕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이전 시기/일시 2002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682번지에서 장안읍 좌천리로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7년연표보기 - 증축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
원소재지 소호정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682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개설]

서호(西湖) 송시호(宋時豪)는 소호정(泝湖亭)에서 기장 현감을 지낸 권적 등과 주자학을 담론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본래 소호정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에 있었는데, 달산리는 일제 시기까지 은진 송씨(恩津宋氏)의 집성촌이어서 글재주로 이름난 은진 송씨 집안의 인사들이 강론하기도 한 곳이었다.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달음산, 구정산, 철마산, 백운산, 용천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사이로 시내가 흐르며, 좁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경치가 수려하여 정자를 세우고, 인근의 오도대(烏島臺)를 감싸고 흐르는 냇물이 정자가 자리한 곳에서 거슬러 올라가듯 굽이쳐 간다고 하여 소호정이라 이름 붙였다.

[위치]

좌천에서 내덕 마을과 덕산 마을로 가는 진입 지점에 위치한다.

[변천]

소호정숙종 대의 시인이었던 송시호가 머물렀다고 전하는 곳으로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조선 말 이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다가 1951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개축하였고, 1987년에 증축하였다. 그러나 소호정이 위치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정관 신도시 지역으로 개발되자, 2002년 소호정을 현 위치로 옮기고, 소호재(泝湖齋) 또는 향모사(鄕慕祠)라고 이름 붙였다.

[형태]

우진각 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였다.

[현황]

소호재에서는 현재 은진 송씨 첨사공파(僉使公派) 문중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는 소호정 편액과 「소호정 상량문」, 「소호정기」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소호정은 기장 지역의 문사들이 교류하던 장소이자 기장의 유림들이 공부한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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