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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916
한자 梵魚寺浮屠-
영어의미역 Sarira Pagoda at Beomeosa Temple
이칭/별칭 범어사 부도전,범어사 부도원,범어사 승탑원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부도
양식 종형(鐘形)|원구형(圓求形)
관련인물 벽파|소천|광덕 등
재질 화강암
크기 약 120~180㎝
소유자 범어사
관리자 범어사
현 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원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의 조선 후기 부도들이 모여 있는 곳.

[개설]

여러 기의 부도가 한 곳에 있는 것을 부도밭[浮屠田]이라고 일컫는데,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범어사 승탑원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부도밭은 사찰의 중심에서 벗어난 다소 외곽 지역에 조성되기 때문에 부도원이라고도 한다. 범어사 부도밭 역시 사찰의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 범어사 부도밭에서는 범어사에서 배출된 고승들을 위해 매년 봄에는 영다례(影茶禮), 가을에는 부도 다례(浮屠茶禮)를 지내는데 다례의 대상은 의상(義湘), 원효(元曉), 태고(太古), 묘전, 서산(西山), 사명(四溟) 등 654명에 이른다.

[건립 경위]

범어사 부도밭에는 30기의 부도가 있는데 조선 후기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건립되고 있다. 이는 조선 시대 이후 불교계가 스승에서 제자로 법계와 전통을 잇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을 중시하는 풍조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상이며 부도밭의 형성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선사를 예우하고 기리기 위한 묘탑으로서 그리고 사찰과 법맥의 대내적 결속과 대외적 위상 등을 위하여 많은 부도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는데 범어사 부도밭 역시 궤를 같이한다.

[위치]

범어사의 일주문 입구에서 왼쪽의 계곡을 따라가면 크고 편평한 바위들이 펼쳐진다. 이곳을 지나 약 40m 가면 숲이 나타나는데 범어사 부도밭은 그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범어사 부도밭에는 30기의 부도가 있는데 앞줄에 11기, 가운뎃줄에 11기, 마지막 줄에 8기가 배열되어 있다. 30기 부도의 크기는 120~180㎝ 내외로 19기는 종형(鐘形) 부도이고 11기는 원구형(圓求形) 부도이다. 종형 또는 원구형은 부도의 탑신(塔身)이 종(鍾) 그리고 원구(圓求)와 유사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부도의 형식은 이 외에 전각형(殿閣形), 석주형(石柱形) 등으로 분류된다. 조선 시대에는 종형과 원구형 부도가 유행했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는 종형 부도가 많이 건립되었다.

범어사 부도밭에 있는 종형 부도의 탑신에는 어떠한 장식도 새겨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탑신의 상단부에 복련(伏蓮)이 새겨진 것도 있다. 탑신의 상단부 위로는 1단 또는 2단의 원형 상륜(圓形相輪) 받침을 두고 연봉형(蓮峯形) 보주(寶珠)를 얹어 상륜부를 표현하였다. 연봉형 보주 일부에는 세로줄로 선각(線刻)을 하였는데 이는 실제 연봉에서 연꽃잎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의 형식은 네모난 받침돌인 지대석(址臺石)을 두고 앙련(仰蓮)이 표현된 1단의 반원형 대석(臺石)이 대부분이다. 일부 상하로 대칭되게 2단의 앙련과 복련을 새긴 반원형 대석도 확인되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경상도 일대에서 특히 유행하던 형식이다.

원구형 부도는 탑신이 원형의 모습을 띠는데 정확히 말하면 길쭉한 타원형이다. 탑신 위의 상륜부에는 옥개석(屋蓋石)[지붕돌]을 올렸는데 옥개석 끝부분에 1단 또는 2단의 원형 받침을 모각하고 연봉을 얹었다. 연봉은 종형 부도보다 좀 더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기단부는 네모난 받침돌인 지대석(址臺石)을 두고 앙련(仰蓮)이 표현된 1단의 반원형 대석(臺石)이 대부분이다.

[금석문]

범어사 부도탑의 탑신 앞면에는 부도의 주인인 승려의 명칭이 음각되어 있다. 새겨진 승려에 대한 관련 기록을 모두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기만 살펴본다면, 최근에 세워진 부도 중에 대표적인 것은 앞줄 왼쪽 가장자리에 승려 벽파(碧坡)[1929~2001]와 광덕(光德)[1927~1999]의 부도 그리고 가운뎃줄의 세 번째에 위치한 소천(韶天)[1897~1978]의 부도 등을 들 수 있다. 불광사(佛光寺)를 창건한 광덕의 부도에는 앞면에 ‘금하당 광덕 대선사 사리 부도(金河堂光德大禪師舍利浮圖)’라 새겨져 있고, 『금강경』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소천의 부도에는 앞면에 ‘소천 대선사(韶天大禪師)’ 그리고 뒷면에 ‘금강 원각탑(金剛圓覺塔)’이라 새겨져 있다. 앞줄 일곱 번째부터 열한 번째까지는 ‘방광탑(放光塔)’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승려 성규·찬윤·성진·석전·지옹이 그 주인이다. 이들에 관한 기록은 현재 찾을 수 없다.

[현황]

근간에도 새로운 부도를 건립하여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던 부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만 범어사 부도밭 주위의 계곡과 함께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 등으로 인해 최근 세워진 부도와는 달리 조선 후기의 부도들에서 많은 이끼들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부도밭에는 조선 후기부터 최근에 이르는 많은 부도가 건립되어 있다. 이 부도들에서 조선 후기에 유행하던 부도 형식들을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자리의 이동이 없었던 범어사 부도밭에서 근현대로 이어지는 승려 동산-소천-광덕의 사자상승(師資相承) 관계를 볼 수 있다. 이는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 승려의 부도들도 근현대 이전의 법맥을 함께한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자료의 발굴과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범어사 부도밭은 과거와 현대를 이어 오는 불교계의 사자상승의 한 단면을 유물로 고스란히 간직한 귀중한 자료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9.14 문장 교열 가을은 부도 다례를 지내는데 -> 가을에는 부도 다례를 지내는데 다례의 대상은
이용자 의견
이** 찾아가기 어려운 분들은 정확한 좌표값으로 쉽게 찾으시길 ^^ 129.069707 35.282336 2019.05.06
김** 이 부도밭에는 30기가 있기 때문에 위의 글에서 보이는 의상 원효 등 654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 다례를 지낼 때 불리는 고승 명단이 654명이 아닐까요?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께서 문의하신 사항을 검토하였습니다. 위 글에서 '범어사에서 배출된 고승들을 위해 매년 봄에는 영다례(影茶禮), 가을에는 부도 다례(浮屠茶禮)를 지내는데 의상(義湘), 원효(元曉), 태고(太古), 묘전, 서산(西山), 사명(四溟) 등 654명에 이른다.'는 문장의 의미가 잘못 전달된 듯합니다. 이 문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영다례와 부도다례를 지내는 대상이 654명의 고승이라는 의미일 뿐, 부도밭에 654명의 고승의 부도가 안치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해당 문단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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