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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림 본동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894
한자 長林本洞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Jangrimbon-dong
이칭/별칭 채씨 할매제,골미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산167-9
집필자 류경자김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1월 17일 10~11시
신당/신체 제당|제단|위패|산신도와 채씨 할매도|당산나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6년 12월 7일 - 산신당, 제당 복원
의례 장소 산신 제당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산167-9지도보기
의례 장소 채씨 할매 제당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산167-9지도보기
의례 장소 골미 당산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산167-9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장림 본동 당산제는 음력 11월 17일 10~11시 사이에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산167-9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에게 동네의 무사태평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채씨 할매제’, ‘골미 당산제’ 등이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정3품 벼슬을 지내던 김근만이 왜구를 피해 말 7필을 거느리고 장림동 본동 마을로 피난을 왔는데, 섬이어서 자갈과 수풀이 많아 ‘장림(長林)’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당시 당산 근처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바로 마을 수호신인 채씨 할머니였다. 채씨 할머니는 1686년 처음으로 이 마을에 들어온 입향조(入鄕祖)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평강 채씨 할머니를 장림포(長林浦)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민 전체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면서 이곳에 제당을 세우고, 해마다 기일(忌日)인 음력 12월 7일을 기하여 자정에 당산제를 모셔왔다. 그러던 중 산신당과 제당이 노후하여 1986년 음력 12월 7일 장림 어촌계 계원 전체의 정성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건립하게 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장림1동 산신 제당과 채씨 할매 제당, 골미 당산은 장림1동 산167-9번지, 선광무지개빌라 5동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당산제를 지내는 본동 마을은 당산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산신 제당은 건물 면적 10㎡[3평, 앞면 370㎝, 옆면 270㎝]에 서북향을 하고 있는데, 우진각 지붕에 붉은색 벽돌로 벽이 조성되어 있다. 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속문은 두 짝 미닫이 띠살문이고, 겉문은 두 짝 여닫이 나무문이다. 겉문 위에는 ‘산신 제당(山神祭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제단[두께 3㎝, 앞면 347㎝, 옆면 40㎝, 높이 81㎝]은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제단 위에는 ‘산령위(山靈位)’라고 쓰인 지방이 위패함[가로 9㎝, 세로 3㎝]에 붙어 있으며, 위패함을 중심으로 정화수 그릇과 촛대가 각각 하나씩 좌우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제단 앞에는 향로상에 향로가 놓여 있다. 제단의 뒷벽에는 유리 액자에 든 ‘산신도(山神圖)’[가로 87㎝, 세로 99㎝]가 걸려 있다.

채씨 할매 제당은 건물 면적이 15.2㎡[4.6평, 앞면 420㎝, 옆면 363㎝]으로, 서북향을 하고 있다. 기와 우진각 지붕에 붉은색 벽돌로 벽을 마감하고 있다. 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속문은 두 짝 미닫이 띠살문이고, 바깥문은 두 짝 여닫이 나무문이다. 겉문 위에는 ‘제당(祭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제단[두께 3㎝, 앞면 414㎝, 옆면 37㎝, 높이 84㎝]은 목재로 만들어져 있는데, 제단 위에는 ‘유인평강채씨지신위(孺人平康蔡氏之神位)’라고 쓰인 지방이 위패함[가로 11㎝, 세로가 39㎝]에 붙어 있다. 그리고 정화수 그릇 2개와 촛대 2개가 산신 제단과 같은 형태로 놓여 있고, 제단 앞에는 향로상에 향로가 놓여 있다. 제단의 뒷벽에는 유리 액자에 든 ‘당산 할매도’[가로 82㎝, 세로 114㎝]가 걸려 있다. 채씨 할매 제당의 바깥 왼쪽에는 화강암으로 된 ‘유인평강채씨제당비(孺人平康蔡氏祭堂碑)’[앞면 42㎝, 옆면 18㎝, 높이 122㎝]가 세워져 있는데, 비석의 뒷면에는 채씨 할매 제당의 연혁이 적혀 있다.

골미 당산은 채씨 할매 제당에서 동북쪽으로 80m 쯤에 있는데, 20여 년 된 포구나무가 신체이다. 나무 아래에는 제단[앞면 145㎝, 옆면 79㎝, 높이 12㎝]이 마련되어 있는데, 서북향을 하고 있다. 골미 당산의 주변에는 소나무가 무성하며, 높이 230㎝, 앞면 길이 14m, 옆면 길이 70m의 블록 담이 둘러 있다.

[절차]

장림 본동 당산제의 제관은 원래 마을의 노인들이 모여 선정했으며, 제관에 대한 보수는 없었다. 2005년 무렵부터는 금덕사의 스님이 와서 제의를 올렸으나, 2011년 현재는 무속인이 주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의의 절차를 비롯한 당산제의 많은 부분이 과거의 전통적 모습에 비하여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과거에는 음력 12월 7일 자정에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는 음력 11월 17일 10시~11시 무렵에 지낸다. 제의의 경비도 과거에는 경로당·뿌리회·청년회 등에서 보조하고, 부족하면 집집마다 추렴하여 100만 원 정도를 모은 후 이를 금덕사의 스님에게 주면 절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현재는 150만 원 정도 소요되는 경비를 어촌계와 노인회에서 일정 부분을 부담하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마을의 노인들과 유지들이 추렴하여 충당한다. 제물 역시 제관이 되는 무속인이 마을로부터 돈을 받아 준비해 온다.

산신제에는 돼지머리와 함께 술·과일·포 등의 간략한 제물과 정화수만으로 지낸다. 채씨 할매제의 제물 진설 및 제의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되, 돼지머리는 쓰지 않는다. 제의는 ‘산신제→ 채씨 할매제→ 골미 당산제’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산신제 때는 살아 있는 돼지의 목을 찔러 산신으로 하여금 그 비명 소리를 듣고 응감케 한다.

과거 제관은 제의 3일 전부터 제의 후 2개월의 금기 기간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현재는 노인회장과 총무를 비롯해 5명 정도가 제의에 참석하여 음복을 하고, 음복을 한 사람들은 1년 정도 초상집에 갈 일이 있으면 남을 보내는 등 금기를 지키며 조심한다.

[축문]

축문은 노인회 회장이 읽고, 위패와 함께 소각한다.

[부대 행사]

장림 본동 당산제를 지내고 난 후에는 부정이 없는 사람만 참석하여 음복하는 것이 원칙인데, 현재는 제사를 지낸 제물을 경로당에 가지고 가서 노인들이 나누어 먹는다. 이때 나누는 음식에 엄격한 금기가 따르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꺼리는 사람은 먹지 않는다.

[현황]

장림 본동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관을 스님이나 무속인이 맡게 된 것은 주민들의 금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금기를 지키기가 힘들어지자 주민들은 부정이 없다고 생각되는 스님에게 제사를 위임한 것이며, 현재의 무속인으로 하여금 제의를 주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당산제의 전통이 사라져 가는 한 단계이기도 하지만, 장림 본동 당산제에 참여한 마을 임원이 아직 금기를 약하게나마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도 있어, 다른 마을의 당산제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는 않은 편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 『부산의 당제』(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부산의 자연 마을』5-북구·사상구·사하구(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10)
  • 인터뷰(사하구 장림1동 노인회 전 회장 이광근, 2011. 6. 7)
  • 인터뷰(사하구 장림1동 노인회 현 회장 김홍문, 201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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