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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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良弼 |
영어음역 | Jeong Yangpil |
이칭/별칭 | 몽뢰(夢賚),추천(秋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화진 |
[정의]
조선 후기 동래 부사로, 동래부 동헌을 지은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 자는 몽뢰(夢賚), 호는 추천(秋川). 동래 정씨 사암공파로 증조 할아버지는 이조 판서 정대년(鄭大年)이고 할아버지는 정휴복(鄭休復)이며, 아버지는 정호(鄭灝)이다. 어머니는 송원(宋瑗)의 딸이다.
[활동 사항]
정양필(鄭良弼)[1593~1661]은 1615년(광해군 7) 을묘 식년시(乙卯式年試)에 진사 1등으로 급제하고, 이듬해 병진 증광시(丙辰增廣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7년(광해군 9) 권지 부정자(權知副正字)에 임명된 뒤 1618년 승정원 가주서, 1619년 세자시강원 설서, 승정원 주서를 지내고 1621년(광해군 13)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는 황주 판관(黃州判官)으로 있으면서 하룻밤에 군량 600여 석을 군전(軍前)으로 옮겨 임금의 칭찬을 들었다. 1630년(인조 8) 사헌부 지평 등을 지낸 뒤 1636년(인조 14) 동래 부사로 나갔다.
정양필은 동래 부사 재임 시 동래부 동헌[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호]과 동헌의 정문인 동래 독진 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호]를 건립하였다. 동래부 동헌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관아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이며 부산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단일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크다. 동래 독진 대아문 역시 전형적인 관아 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홑처마에 지붕이 양쪽 협간보다 높은 솟을삼문 형태이다. 1642년(인조 20) 충청도 관찰사일 때는 흉년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의 요역(徭役)을 줄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1644년(인조 22)에는 정조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동지중추부사, 한성부 우윤 등을 역임하고 1661년(현종 2) 옹정촌[현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정양필의 묘는 충청남도 연기군에 있었으나, 1986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원부리 산 2번지 오미 마을에 위치한 동래 정씨 세장지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