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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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一誠 |
영어음역 | Gim Ilseong |
이칭/별칭 | 여빈(汝彬),채정(蔡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심민정 |
[정의]
임진왜란 당시 부산 기장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빈(汝彬), 호는 채정(蔡汀). 도총관공 김경신(金敬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통정대부 김수(金洙)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한 김일개(金一介)·김일덕(金一德)과 형제이다.
[활동 사항]
김일성(金一誠)은 기장현 하북면 예림방[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에서 태어났다. 화철령(火鐵嶺)[기장군과 울산군의 경계가 되는 기장군 장안읍 신명례 동쪽에 있는 재]과 금조평(金助平) 전투에 참여하여 적을 야습하는 등 전공을 세웠으며, 기장 출신의 소년 의병장인 이석숭과 힘을 합쳐 태화진 전투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울산에서 순찰사 박진(朴晋)과 뜻이 맞지 않아 홀로 동래읍성으로 달려오다 중간에서 왜군들을 만나 좌충우돌하는 싸움을 하다 끝내 포로가 되었다. 왜장은 김일성을 죽이기 아까워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를 거부하고 일본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초를 당하면서 살다가 7년 만에 탈출하여 고국으로 돌아 왔다. 임진왜란 후 나라에서는 김일성에게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이를 받지 않고 은거하면서 학덕을 연마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는 의열사(義烈祠)에서 형제인 김일개·김일덕과 함께 봉향되고 있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 원종공신 3등에 봉해졌고, 영조 때 병조 참의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