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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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幡貞 |
영어음역 | Isibata Sada |
이칭/별칭 | 석번정(石幡貞),자간(子幹),동악(東嶽)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허경진 |
[정의]
개항기 부산을 방문한 일본의 외교관이자 시인, 교육자.
[가계]
자는 자간(子幹), 호는 동악(東嶽). 아버지는 이시바타 기치사부로[石幡吉三郎]이다.
[활동 사항]
이시바타 사다(石幡貞)[1839~1916]은 후쿠시마 현[福島県] 출신으로 1871년(고종 8) 외무성(外務省)에 출사하였다. 야나기하라 사키미쓰[柳原前光]를 수행하여 청나라를 방문하고 귀국 후 사법성(司法省)으로 옮겼다. 1874년(고종 11) 조선 사건을 계기로 외무성에 복귀하여 조선 수호 조약 체결에 진력하였다. 1876년 6월 17일 미야모토 쇼이치[宮本小一] 이사관이 조선에 올 때 외무 4등 서기생으로 수행하였다. 그해 11월 24일에 부산항에 도착하여 동래 부사 홍우창(洪祐昌)과 조계(租界)[개항 도시의 외국인 거주지] 경계를 측량하는 등 실무를 지휘하였다. 또 조선어 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개화기 부산의 변화하는 모습을 칠언절구 100수로 표현하였다. 1882년(고종 19) 일본으로 돌아가 제2고등학교(第二高等学校) 교수를 지냈다.
[학문과 저술]
에도 시대 유학(儒學)을 집대성하고 근대 한학(漢學)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받는 야스이 소켄[安井息軒][1799~1876]에게 사사하였다. 1904년(고종 41) 우범선(禹範善) 묘에 비석을 세울 때 비문을 지었으며 『조선 귀호 여록(朝鮮歸好餘錄)』 5권 3책[日就社, 1878], 『한성 조난 시기(漢城遭難詩記) 1권 1책[東洋館, 叢書閣, 1884], 동악문초(東嶽文抄) 4권 4책[1910] 등의 저서가 있다.
첫 번째 시문집인 『조선 귀호 여록』 권1은 「부산 백영(釜山百詠)」으로, 1877년 3월 11일~20일에 「누전경보(漏傳警報)」부터 「발늠수련(發廩垂憐)」까지 앞부분 50수를 지었고, 「경보비허(警報非虛)」부터 「광제장기(廣濟長企)」까지 뒷부분 50수는 3월 20일~10월 7일에 지었다. 「죽지사(竹枝詞)」[향토의 경치와 인정, 풍속 등을 노래한 12가사]의 형식에 맞추어 칠언절구 100수를 지었는데, 각 시에는 내용을 압축한 넉 자로 된 제목이 달려 있어 제목만으로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시 앞에는 사건을 설명하는 소서(小序)가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