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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05
한자 朴文夏
영어음역 Bak Munh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용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사|수필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문인협회 회장
출생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75년 3월 31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319
거주|이주지 중국 상하이
거주|이주지 중국 베이징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활동지 민중병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정의]

부산 출신의 의사이자 수필가.

[개설]

아버지는 박용한(朴容翰)이고 어머니는 김맹련(金孟蓮)이다. 아버지 박용한은 한말 동래 지역의 선각자들이 설립한 개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와 서울의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의 탁지부 주사를 지내다가, 일제의 무단 통치에 항거하여 순국 자결한 애국 지사였다. 박용한의 동생 박일형(朴日馨)은 일제 강점기에 항일 활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인민위원회 경남도위원회에서 선전책으로 활동하였다.

어머니 김맹련은 한국 독립운동의 거목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반을 지낸 김두봉(金枓奉)과 독립운동가이며 제헌 의회 의원인 김약수(金若水)의 사촌이었다. 이러한 부모에게서 자란 박문하의 형제들은 모두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누이인 박차정(朴次貞)은 동래 출신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의열단 단장 김원봉(金元鳳)과 결혼하였다. 큰형 박문희(朴文熺)신간회의 중앙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둘째 형 박문호(朴文昊)는 의열단 간부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활동 사항]

박문하(朴文夏)[1918~1975]는 1918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319번지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박문하의 성장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항일활동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항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누이 박차정이 1920년대 후반 동래일신여자학교 재학 중에 학생들의 집을 순방하며 비밀 연락을 다닐 때 8살 위인 누나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면서 사회의식을 길렀다.

1930년대에 형들과 누이가 모두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 활동을 할 때 박문하도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박문하의 나이가 어려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귀국하였다. 박문하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가 순국하였는데, 이후 형과 누이마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시련을 이겨 내며 공부해서 외과 의사가 되었다.

박문하는 이후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동래 시장 앞에 민중병원을 개원하여 동래 주민들 사이에 인술을 펼치는 의사로 유명하였다. 또한 수필에 대한 조예와 열정이 남달라 향파 이주홍(李周洪), 청마 유치환(柳致環), 삼오당 김소운(金素雲), 요산 김정한(金廷漢) 등 많은 문인들과 교우하였다. 박문하는 제4대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1960년대~1970년대에는 여러 편의 수필을 써 각종 일간지와 문예지에 발표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동래구 의사회장 등 의료 활동도 병행하였으나 만년에는 장남을 잃은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진찰실에 소주병이 떨어진 날이 없었다고 하며 결국 간이 손상되어 1975년 3월 31일 동래구 수안동 자택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는 『배꼽 없는 여인』·『인생 쌍화탕』·『약손』·『낙서 인생』 등 4권의 수필집이 있으며, 사후인 2008년 부산문인협회에서 『우하 박문하 전집』을 다시 펴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04.15 오타 수정 박용한의 동생 박일형(朴日亨)은 ... --> 박용한의 동생 박일형(朴日馨)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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