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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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國時代-城郭-地方行政 |
영어의미역 | Castles and Provincial Administration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나동욱 |
[정의]
삼국 시대 부산 지역에 있었던 방어 시설과 행정 체계.
[내용]
삼한 시대에 북쪽에는 고구려와 부여가 성장하는 한편, 남쪽에서는 삼한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부산 지역의 독자적인 정치체를 변한 12국 중의 하나인 독로국(瀆盧國)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독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동래와 거제도 두 지역이 거론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거칠산국(居柒山國), 내산국(萊山國), 장산국(萇山國) 이라는 소국(小國)이 나타나는데, 독로국과 이들이 같은 세력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4세기경 철제 무기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전쟁이 자주 발생하게 되면서 삼한의 소국들은 인접한 소국들끼리 연맹을 맺거나 더 큰 집단으로 병합, 혹은 통합되기도 하였다.
부산 지역의 정치 집단은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4세기부터 5세기 초까지 문화를 공유하였다. 이때 부산 지역의 지배 세력은 김해의 지배 세력과 함께 풍부한 철 생산을 배경으로 원거리 항해를 통해 철기를 바탕으로 한 대외 교류에 참여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헌에 보이는 장산국 또는 내산국을 신라가 취하여 거칠산군(居柒山郡)을 두었다고 하는데,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대형 고분이 축조되는 시기가 4세기 대인 것으로 보아 연산동 고분군과 함께 거칠산국과 관련된 유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400년에 고구려군 5만의 병력이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였고, 가야 지역 일부도 정벌하게 되면서 5세기 이후 금관가야는 차차 쇠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금관가야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부산 지역은 고구려의 후원을 받은 신라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가야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신라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6세기에는 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어 직접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고, 경주와 가까운 양산이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자 부산은 신라의 변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당시 거칠산군은 대증현(大甑縣)과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을 영현으로 관할하고 있었다. 부산 지역에서 이 시기까지 소급될 수 있는 성곽 유적은 연제구 연산동 배산 정상부에 있는 배산성과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 있는 서부리 산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유적 인근에는 고읍성이 위치하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산성을 중심으로 군사와 행정 업무가 처리되다가 통일 신라 시대가 되면 평지로 이동하면서 고읍성으로 그 기능이 옮겨 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