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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95
한자 斥和碑
영어의미역 Anti-foreign Stel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재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1년 4월연표보기 -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24년 - 용두산 공원으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78년 - 부산광역시립박물관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척화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척화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남구 대연동 948-1]지도보기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부산진성
성격 비|척화비
관련인물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재질 화강암
크기 143㎝[높이]|44.7㎝[너비]|23.8㎝[두께]
소유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있는 개항기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세운 척화비.

[건립 경위]

척화비(斥和碑)고종흥선 대원군이 병인양요(丙寅洋擾)[1866]와 신미양요(辛未洋擾)[1871]를 겪은 뒤 서양과 일본 등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할 굳은 결의를 나타내어 백성들에게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1871년(고종 8) 4월 서울과 전국의 주요한 곳에 세운 비석 중 하나이다.

[위치]

척화비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부산진성이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었으나, 1924년 용두산 공원으로 옮겼다가 1978년에 다시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으로 이전하여 전시·보존하고 있다.

[형태]

비의 크기는 높이 143㎝, 너비 44.7㎝, 두께 23.8㎝이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기단, 비신(碑身)[몸돌], 옥개석[지붕돌]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석문]

비석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아니하고 화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니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한다. 병인년에 만들어 신미년에 세우다[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라고 적혀 있다.

[의의와 평가]

척화비는 우리나라 개항 당시의 역사와 사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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